브루그만의 시편사색
월터 브루그만 지음, 조호진 옮김 / 솔로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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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시편 묵상이 시작된다. 말씀을 보는데 도움을 받기 위한 책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구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이 쓴 책들을 몇 권 발견했다. 그의 시편 관련 책들은 2020년 4월 현재, <시편적 인간>(2017, 한국장로교출판사 역간), <브루그만의 시편사색>(2007, 솔로몬 역간), <시편의 기도>(2003, CLC 역간) 총 세 권이 출간되었다. 나는 저자의 신학 발전을 감안하여, 원서의 출간 순서대로 <브루그만의 시편사색>(Message of the Psalms(1985년)), <시편의 기도>(Praying the Psalms(1993년)), <시편적 인간>(From Whom No Secrets Are Hid(2014년)) 순으로 읽을 계획을 세웠다.


<브루그만의 시편사색>은 시편 전체를 개관하는 것과 동시에 (제한적이긴 하지만) 각 편의 주석까지 포함한 책이다. 시편의 숲과 나무들을 동시에 보게 한다.


「역자 서문」은 이 책을 유용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세 가지 내용을 알려준다. 첫째, 본서에서는 브루그만이 직접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한 성경본문을 사용한다. 둘째, 저자는 독자들이 시편을 잘 알고 있다고 전제를 하고 책을 써나갔다(각 편의 주석에서는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다). 셋째, 브루그만은 비평주의 방법론(특히, 양식 비평)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초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 세 가지 전제를 알고 본서를 읽는다면 당황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다. 


브루그만은 이 책에서 시편 전체를 개관하기 위해 “정위”-“혼미”-“새로운 정위(new orientation)”의 ‘틀’을 사용한다. “정위(定位, orientation)”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생물체가 몸의 위치나 자세를 능동적으로 정함. 또는 그 위치나 자세”를 말한다. 영어사전에 의하면 “(목표하는)방향, 지향, (사람의) 성향”를 뜻한다. 본서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감사하도록 만드는 만족스런 시기들로 구성”(29p)되며, 이는 소위 인생의 봄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위의 다양한 방식들로 “기쁨, 즐거운, 선함, 조화 그리고 하나님의 신뢰성,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규범 등”(29p)이 있다.  


“혼미(昏迷, disorientation)”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정세 따위가 분명하지 아니하고 불안정함.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교양영어사전에 의하면 방향감각 상실을 뜻하며 이는 “주위환경에 대한 자기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잃은 상태. 즉, 좌우(左右)·장소·시간, 친숙한 것에 대한 인식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본서에 따르면 “인간 삶은 상처, 외로움, 고통 그리고 죽음의 시기들로 인한 고통으로 구성”(30p)되며, “이런 것들은 분노, 후회, 자기연민 그리고 증오 등을 일깨운다.”(30p) 


“새로운 정위(new orientation)”는 합성어다보니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을 통해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본서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새로운 은총에 압도당할 때, 절망 가운데서 갑작스럽게 기쁨이 끼어들어 올 때, 놀라움 속에서 찾아오는 반전으로 구성된다. 오직 어두움만이 있던 곳에 빛이 있게 된다. 이런 복음의 놀라움에 잘 상응하는 것”(30p)이 바로 새로운 정위이다. 


(차이가 있지만 느낌상) 이는 마치 창조-타락-구속과 유사하다. 창조의 아름다운 날들에서 타락의 나락에 떨어졌다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으로 나아가게 되는 여정이, ‘정위’의 봄날과 ‘혼미’의 고난과 ‘새로운 정위’의 회복과 닮았다. 브루그만은 이 인식의 틀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부정적인 (내용의) 시편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사용”(11p)하는 것이지, 이 골격 자체가 엄격한 기준이 되어 시편 전체를 포괄하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편 전체를 이해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이런 구조적, 인식적 틀을 가지고 150편을 접근한다면 시편이 그냥 노래 모음정도로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편을 이해하기 원할 때 시편 전체에 대한 개론을 제시한「서론」만 읽어도 충분한 값어치를 하는 책이다. 


「정위의 시편」은 ‘창조 시편’, ‘토라 시편’, ‘지혜 시편’, ‘보상 시편’, ‘웰빙의 경우들’로 구성되어 있고,「혼미의 시편」에는 ‘개인 탄식 시’, ‘공동체 탄식 시’, ‘두 개의 난제 시편’, ‘혼미에 관한 “두 번째 견해”’, ‘“일곱 개의 시편들”’, ‘쇄도 이후-당신은’이,「새로운 정위의 시편」에는 ‘감사 시’, ‘공동체 감사 시’, ‘과거 그리고 미래의 왕’, ‘확신으로 일반화된 감사 시’, ‘찬양 시’가 있다. 각 분류별로 해당되는 시편의 주해들이 있어 책의 맨 뒷페이지 시편 색인(총 59편 수록)에 관련 본문이 포함되어있을 경우 주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회고: 영성과 신정론」은 시편 이해에서 매우 중요한 장이다. 시편은 개인과 공동체 영성의 중요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정의와 불의의 투쟁을 보여”(334p)준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공동체의 본성에 대한 관심 없이는, 결코 송축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갈망자들은 결코 공의에 관한 질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334p) “시편은 개인적인, 내세적인 영성의 중심부로 있어 왔거나 혹은 그런 의미에 대한 질문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만약 내가 시편을 올바르게 읽었다면, 이런 시편들은 특징적이게도 ‘의미’보다 ‘공의’를 더 중시한다. 시편은 공평, 권능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을 충분히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를 규칙적으로 주장한다. 시편을 이와 같은 공동체적 관심사들로부터 빼내올 수는 없을 것이다.”(348p) 시편을 개인 영성 훈련 도구로만 활용하지 않고, 사회 정의와 공의를 촉구하는 본문으로 읽을 때라야 비로소 시편을 제대로 읽은 셈이 된다. 


시편 전체에 대한 균형감 있는 안목을 길러주고, 때로는 주석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브루그만의 시편사색>은 시편 묵상을 앞둔 이들에게 유익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이제 다음 책 <시편의 기도>를 펼친다. 이 책에서는 내게 어떤 말을 건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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