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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 우리의 자랑 - 한국의 대표 과학기술자 47인이 전하는 과학자의 길, 인간과과학 총서 23
한국과학문화재단 엮음 / 양문 / 2006년 4월
평점 :
한 사람의 삶은 대체로 여러 차례 굴곡을 겪는다. 도전은 인생 향로를 크게 바꾸게 하기도 한다. 냉철하고 명민해야 할 것 같은 과학자의 삶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제39회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펴낸 〈과학기술인! 우리의 자랑〉(양문)은 과학자 47명이 왜 과학의 길을 선택했는지 진솔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는 한권의 책과 편지가 계기였다. 평북 선천이 고향인 그는 광복 뒤 김일성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뿐 교과서조차 없었다. 평양 고서점에서 만난 에드윈 허블의 〈성운들 저 건너편〉에서 위안을 얻어야 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과학자보다는 정치가가 되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연희대학 1학년 때 천문학 강좌에서 짧은 인연을 맺은 이원철 박사가 8년 만에 보내온 “외도 말고 천문학을 하라”는 편지는 그의 인생 설계를 바꿔놓았다.
‘똥박사’로 통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완철 박사는 농사짓다 만난 재앙이 기회가 됐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 상주농업고등전문학교에 들어간 그는 ‘배운 놈이 농사를 짓는다’며 제초제를 추천하라는 친척에게 농약을 구해줬다가 개구리며 붕어 등 논에 살던 생물이 죽고 급기야 벼마저 말라죽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며칠 고민하다 “다른 세상을 보라”는 어머니 권유로 서울행을 했다. 어독성 실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제초제가 젊은이의 작은 꿈을 접고 평생 ‘똥’ 연구 학자의 길을 걷도록 했다. ‘새박사’ 윤무부 경희대학 교수 명함에는 인디언 추장새 ‘후투티’ 아이콘이 새겨져 있다. 거제도 장승포가 고향인 그에게 해마다 봄이면 먹이를 찾아 동네 뒷산 뽕나무밭에서 20여일 머물다 사라지던 새에 대한 궁금증이 조류학자의 꿈을 만들었다. 윤 교수는 “새들에게 배운 것은 질서, 근면, 도전이라는 자연의 법칙”이라며 “공부는 좀 떨어지더라도 새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면 학자, 교수, 전문가, 박사란 칭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재천 이화여대학 석좌교수는 어렸을 때 단 한번도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부모 권유로 본 서울대 의대 시험에서 두번 낙방한 그는 제2지망으로 붙은 생물학 공부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그에게 천사처럼 나타난 이는 세계적인 하루살이 곤충학자 조지 에드먼즈 교수. 한국을 방문한 그를 일주일 동안 따라다닌 끝에 최 교수는 어렵사리 영어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관광도 한번 못하고 물에서만 첨벙거리다 가시나요?” 에드먼즈 교수는 “나는 유타대 교수로, 솔트레이크시티 산 중턱 저택에서 금발 미인을 부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하루살이를 연구하러 세계를 돌아다닌다. 당신 나라가 102번째”라고 답했다. 최 교수는 그길로 무릎을 꿇고 “선생님처럼 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했다.
인생의 고비는 삶에 대한 관조의 싹이 틔워올랐을 30,40대에도 찾아온다. 의사집안 출신으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된 안철수 박사는 대학 본과 1년 때 함께 하숙하던 친구의 컴퓨터에 매료돼 컴퓨터바이러스 전문가가 됐다. 그러나 조교수 임용을 앞두고 안 박사는 고민에 빠졌다. 서울의대 졸업, 20대 의학박사, 20대 의대교수를 버릴 것인가, 컴퓨터를 하면서 느끼던 자부심·보람·사명감·성취감을 포기할 것인가. 안 박사는 남 보기 좋은 삶을 버리고 경영자로 변신하기로 결심했다.
-<한겨레> 2006년 4월 20일자 이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