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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평점 :
해부학자의 세계란 그들의 책장에 있을 책들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기에 제목만 보고 덜컥 새로운 세계의 파도와 비바람을 맞고 오들오들 떨지 않을 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의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준 해부학에 관한 시초와 발전과정, 그 과정에서 생겨난 오해와 맹신, 명예에 대한 결투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짧게 배웠던 생리학, 생화학, 독성학의 지식을 짜내어야 하나 싶었는데, 의외로 위생곤충학이란 과목에서 배웠던 각종 이, 빈대, 진드기 등의 구조와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해부학자의 세계에서 만나는 그들의 서재에 역사의 순서대로 놓여진 책과 해부된 인체의 도판들에서 아름다운 미술의 극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해부학의 기록이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이지만 미국 골동품 전문가의 이름을 따서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라고 불리는 것도 혼돈의 시작으로 생각되어졌습니다.
해부학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시체와의 뗄 수 없다보니, 도덕적이지 않은 여러 거래들과 살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계몽의 시대로 이어지는 인류의 종교적, 시대적, 의료의 변화에서도 시체와의 거래는 추악한 인간의 물질적 욕심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메리 로취의 [인체 재활용] , 세계사(품절) 에서 이미 읽었던 내용이었기에 그래 그때 그랬지 하면서도 시체를 제공하고 돈을 받기 위해 동의하지 않은 시체를 파서 팔거나 시체로 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도 해부학의 발전에 드리워진 어두워진 그림자입니다.
그래도, 무엇보다 해부학자의 세계에서 인체의 각 피부, 뼈, 힘줄, 신경, 뇌에 붙여진 이름들에서 미지의 셰계를 해부하고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해부학자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내 안에 새겨진 낯선 해부학자의 이름이라니....
"카세리와 스피켈은 해부학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겼다. 그중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스피겔이다. 스피겔의 이름은 간의 일부인 스페겔 엽, 복부근육의 스피겔 선과 스피겔 근막에 남아 있다....중략...카세리는....중략...그가 발견한 되의 대뇌 동맥고리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붙어....이 부위를 재발견한 토머스 윌리스의 이름을 따서 '윌리스 동맥고리'라고 부른다. " p.214
해부학자를 미지의 세계를 분해하고 그 이름과 기능에 자신의 이름을 붙어나간 모험가, 개척가의 모습을 연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안에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있다니,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
해부학이라 잘 알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악령 보다 더 술술 읽었으며, 책 속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240여장의 해부학 도판은 예술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해부학자들의 관찰은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고, 예술가들은 인간의 인간의 형상에 점점 관심을 기울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렸는데 해부학자들과 예술가들의 이음은 인체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함께 해부학자들의 책에 수록되어진 그림에도 정교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체를 그려내는 예술가들의 섬세하고 세밀한 터치와 함께 해부학자들의 피부를 자르는 날카로운 칼의 소리없음이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해부학자들의 셰계는 책의 책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해부학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대순으로 해부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였던 시대와 그 시대의 해부학 선장, 그리고 기록물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가장 이책의 중요한 해부학이 인체를 표현하는 예술과 함께 서롤 등을 내어 짊어지고 있음을 읽었습니다.
지금은 X-레이나, CT, MRI 등의 기술로 인간의 병과 치열한 싸움에서 최전선의 방어와 공격을 다하고 있기에 인간의 해부에 관한 많은 기록과 영상을 가지고 있게 되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해부와 관련된 마취, 현미경, 냉장 기술 등도 소개하고 있어 현 시대의 해부학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발전과 발명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해부학의 교양으로 읽기 좋으며, 해부학 도판과 사진 자료들만으로도 이 책은 해부학자들의 서재가 아닌 애서가들의 서재를 차지할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가을 해부학 지식 + 10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