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패의 향연 - 최후의 금기어를 논하다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오승우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평점 :
흔히들 현대사회에 들어 실패에 관대해졌다고들 한다.
실패는 성공과 기회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위로하거나 혹은 어느 기업의 사장이 프로젝트에 실패한 사원들에게 외려 상을 내렸고 그 후 더 큰 성공을 거뒀다는 일화는 또 다른 성공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일까?
관대해졌다는 말의 뒷면에는 결코 인정할수도, 용서할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조금은 이해해 주겠노라는, 실패를 ‘실패’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성공’이라는 틀안에 엮고 싶다는 당혹감의 표현인것이다.
이런 모습에 저자는 [실패를 행운으로 다루는 한 우리는 실패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인즉, 밑바닥까지 치닫는 실패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저들의 실패논리가 적용될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끝모를 패배감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황망함에 어떻게 그 사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수 있으며 이 실패를 기회라고 생각하며 의기양양 다시 딛고 일어설수 있을까.
Tv속 스타들은 말한다. 나를보라고, 나처럼 이러이러하게 사는것이 곧 행복이고 성공이다.
그러니 나처럼 되야해요. Just do it! 하세요, 당신은 할수있어요.
당신은 이러할 능력과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사람들에 얘기하고 세뇌시킨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그들을 꿈꾼다.
그들이 살았던 삶을 따라하고 계획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이룰수 없었던 꿈에,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바꾸지 못한 이 현실에 더 큰 실패와 실망감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소주를 들이키며 읖조린다. 세상에 농락당했다고, 세상이 나를 속였다고...
그래, 맞다.
세상이 당신을 속인거다.
당신이 철썩같이 믿었던 그 행복과 성공들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성공은 이러할것이다’라는 정형화된 환상이자 한낱 ‘쇼’에 불과했고 세상은 순진한 당신에게 이러한 불가능한 목표들을 꿈꾸도록 옆에서 부추기고 다독인것이다. 다시말해 당신은 안타깝지만, 있지도 않은 적군을 물리치려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실패가 예정된 일 따위에 스트레스 받지도, 힘들어하지도 말지어다.
그리고 실패를 했다면 그냥 그렇구나. 나는 또 한번의 실패라는것을 하였구나 라고 생각하자.
실패는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자.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일이...!!”라고 하늘에 외칠 그런 절망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밥을 먹었는데 체했고, 자식을 낳았는데 그놈이 속을 썩인다는등, 그런.. 그런 있을수 있는, 평범한 일인 것으로 받아들이자. 너무 무겁게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지말자. 죽을것만치 두려워도, 사실 본질은 별것 아니기 일쑤. 끝모를 추락을 했다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상대적일뿐, 그렇게 밑바닥인것도 아니다. 단지 주위사람들이, 세상이 당신의 불행을 강요하고 있는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실패했다 믿는 이들에게 위로한다.
“그럴수 있다고.”
169p
실패했을 경우, 정신적으로 크게 실망하고 실패했다는 인식에 괴로워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체성을 잃는것도 아니다. 실패를 했든 안했든 같은 인간이고, 우리의 희망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사람이 되는것도 아니다. 처음엔 지배자인A였다가 나중에 거지인 B가 되는게 아니다. 우리는 위기 상황에 빠진다해도 언제나 나 자신일 뿐이다. 이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릴는 그저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