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키틀러 컴북스 이론총서
유현주.김남시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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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키틀러의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키틀러는 사유하는 주체적 인간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흔히 쓰는 '소위 인간'이라는 인간에 대한 격하가 이를 증명한다. 그는 기술 변화(발전이라는 표현은 키틀러의 입장을 명백히 대변하지는 않을 것이다)가 만들어내는 삶의 방향에 주목했다. 키틀러의 대표 저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는 기계에 의해 변화하는 우리의 지각 체계를 보여준다. 그는 라캉의 상상계/상징계/실재계 개념을 차용해 이를 설명하는데, 축음기는 우리가 충만하다고 여겨온 소리(상상계)에 소음(실재계)의 존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실재적이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재적으로 보이지만 한편 24프레임이라는 시각적 조작으로 실재의 흔적들을 지운다는 점에서 상상적이다(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하긴 어렵다). 마지막으로 타자기는 펜으로 대표되는 사유-언어화의 연속적 흐름을 타자 작업이라는 분절된 행위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상징계를 대표한다. 보통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타자기를 언급하며 키틀러가 주장한 펜의 '남성적 글쓰기'에서 타자기의 '탈성적 글쓰기'인데, 이 표현이 어느 정도 비유의 성격을 갖더라도 이 비유에서 사유하고 글을 쓰는 여성의 위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키틀러에게 타자기 이전의 글쓰기란 모체(가이아)로부터 끌어온 것이며, 이 작업은 남성에 의해 완성된다. 탈성화된 글쓰기에서도 여성 주체의 글쓰기란 없다. 기록의 생산자는 남성 작가, 여성 타자수, 기계로 삼분할되지만, 이때의 여성이란 기록자일 뿐 정보의 생산자는 아닌 셈이다. 

이런 측면들 때문에 키틀러는 여성혐오자, 비관주의자, 기술결정론자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전부 키틀러 이론을 빗겨가는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키틀러 이론은 '인간' 개념을 집어던졌다는 점에서 탈인간에서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는 포스트휴먼의 사유와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키틀러 이론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재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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