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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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후 꾸준히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보고 있다. 나이가 들어 집중력은 떨어져만 가고 두 손주녀석들까지 돌보면서 읽을 틈을 내기가 쉽지 않은 중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창작과 비평을 읽으려 애쓰는 까닭은 이조차 하지 않으면 삶에 매몰돼 세상과 동떨어져 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있지만 세상을 보는 뚜렷한 입장과 방향을 가진 글을 읽는 것은 나의 삶을 돌이키며 남은 생을 준비하기에 분명 힘이 된다. 이번호엔 좋아하는 박노자 선생의 글이 실렸다. 선생의 글이 다루는 주제의 깊이와 넓이에 늘 감탄하지만 이번호의 <한국의 '글로벌' 담론을 추적하다>는 더욱 그러하다. 이 글은 1603년 곤여만국전도의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글로벌리티'(지구의식, 지구론) 담론이 어떠하였는지를 한국 근현대사를 매개로 전개된다. 인상 깊었던 지점은 박정희 시절과 "어용적 민족주의로 일관되는 역사 및 사회과학 교육"이 어떻게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운동권 일분의 주체사상 도입과 닿아있고 한편으론 식민지 청산 회피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분석이었다. 박노자에 따르면 1970, 80년대 학교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외세와의 투쟁', '국난 극복' 사관에 익숙한데 이렇듯 한국인의 의식세계를 강력하게 규정한 이 민족주의는 한편으로 식민지 시대를 비롯한 과거 트라우마의 제대로 된 거론 자체를 회피하며 훗날 '뉴라이트'의 등장을 낳는다. 국가주도로 형성된 담론이었던 이 어용적 민족주의는 '외세와의 투쟁', '국난 극복'을 내세우면서도 당시 지배 엘리트가 가진 '민족적' 명분을 회의할 수 있었기에 친일 문제를 거론할 수 없었다. 박정희뿐만 아니라 만주국 관료 출신인 최규하 등 공직자 집단 원로, 중진층 상당수의 과거가 문제 될 수 있기 때문에 친일파나 '위안부' 등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과거, 역사 문제는 1990년대 민주화와 함께 제대로 제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친일청산을 받아들이지 못한 주류 (극)우파는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 규범 본위의 '보편'을 절대시 하며, '민족'이라는 사상적 요소를 제거하다시피 하며 "자본주의와 시장, 종합적으로 '근대성'을 절대시하는 차원에서 일제 식민정책과 친일행위, 그리고 독재를 '긍정적인 역사유산'으로 둔갑시킨다.(39)" 이 지점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우파가 왜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세력이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개발주의 시대의 '국익 제일주의'가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크게 자리하며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치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지 않게 한다는 분석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박노자는 현 정권의 친미친일 편향 외교를 근거있게 비판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해하는 최악의 인권침해 상황에 어째서 침묵하고 있는지를'국익 제일주의' 관점으로 한국의 진보가 가진 한계를 말하고 비판하면서  일국 차원의 자본주의적 이해를 떠나 전체로서의 '인류의 이해' 범위 내에서 사고할 것을 주문한다. 비서구 지역과 그 출신에 대한 아류 제국주의적인 태도는 한국 주류 (극)우파만의 것이 아니다. 소위 진보라고 하는 이들조차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데 박노자는 이러한 태도를 근절할 것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들이 매일 먹는 식량의 상당부분을 생산하는 국내 농장들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여전히 컨테이너에서 살면서 임금체불과 폭행, 폭언, 성추행에 시달린다면, 과연 캄보디아 사회가 한국의 근현대적 여정과 그 성취들을 하나의 '보편'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42) 읽으며 나는 어떠하였나 돌이켜본다. 내 안에서는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었나? 지금의 일상이 그들의 노동으로 영위되고 있음을 자각하고 상기할 때 동등한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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