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까는 여자들


  한겨레 출판의 #하니포터2기, 써포터즈로 참여하니 신간 서적을 자주 접하는 중이다. 덕분에 관심 분야 밖의 책도 읽게 되어서 다양한 사고와 삶의 형태를 마주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판을 까는 여자들'은 관심 밖이 아니라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다. '이대녀, 이대남' 등 다른 신조어를 대하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은 알았어도 '이대녀, 이대남'은 생경 그 자체다. 그래서 매우 관심 있게 정독 했다. 이 시대의 젊은 청춘들이 어떠한 사고를 하며, 괴로워하는지 조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이 책은 20대 대통령 선거 전에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몇 페이지를 읽으며 평소 지지하던 후보자를 변경하였다
.

사실 S여성과 A남성 후보자 중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S여성 후보는 몇 해전부터 지지했다. 막상 선거 날이 가까워오자 여성 후보의 실현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이상세계 구현보다, A남성 후보의 현실적이며 긍정적인 미래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만 한 채 최종 결론을 유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성 후보가 중도 하차하였다. 그 바람에 이왕 대통령 될 인물을 찍지 않을 바에야 참신한 젊은 여성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어서 미래를 기약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선거인 벽보 중 끝에서 찾아보는 것이 더 빠른 번호를 외워서 사전 선거로 미리 의사표시를 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지만, 보무도 당당하게 첫 걸음을 내디딘 후보자에게 희망과 함께 봉투에 한 표를 넣었다.


  책의 앞, 뒷면의 표지만 보고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 표지의 그림에는 모래 시계 아래, 위 전면에 바둑판 무늬가 그려져 있다. 또 위, 아래를 분리하는 주홍색 분리선 안에는 "환멸나는 세상을 뒤집을 '이대녀'들의 목소리"가 구호처럼 쓰여져 있다. 모래 시계 윗부분인 보라색 모래가 내려가지 못하고 주홍색 분리 구역에 갇혀 있다

. 아래에 모래가 없는 노란색의 주홍색 바둑판 무늬는 마치 세대 간의 높은 사고의 벽,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의 장벽

가부장제에 짓눌린 남녀의 갈등 등이 상하로 나뉘어져 있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보라색 모래에는 #'판을 까는 여자들' 제목이 주홍색 분리 공간을 뚫고서 비어 있는 노란색으로 향하려는 듯 출발선에 서있는 달리기 주자로, 노란색 바닥에는 '최악과 차악만을 던져주는 사회에서 20대 여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이 문장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려는 주자들의 고뇌가 주저앉아 있는 의미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해봤다. 


  작가는 신 민주, 로라, 노 서영 씨. 외래어와 신조어가 많아서 인터넷과 사전을 찾느라 굉장히 분주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사람의 입에서 불평 소리가 아주 컸다. 작가들에게 부탁 하노니 부디 외래어와 신조어를 사용하려면 참고할 자료를 꼭 넣어서 몰입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곳곳에 그런 흔적이 보였지만 부족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높은 나이 많은 구독자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돋보기를 착용하고 읽는 처지여서 검색하는 번거로움을 덜어 달라는 말이다. 세 작가 덕분에 곧 잊고 말 테지만 제법 유식해졌다.

 

  신 민주 씨가 '국회 보좌관은 왜 다 중년 남성일까'로 글 숲을 공개했다. 국회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더 높은' 남성 보좌관, 즉 어린 여자애보다 훨씬 정책을 잘 알고 더 전문적인 사람으로 전화를 바꿔달라는 요구>의 전화를 받았던 모양이다. 20쪽 <유일하게 여성 보좌관이 많아지는 직급은 8급과 9급 공무원이었다. 8급 여성 비서는 53%, 9급 여성 비서는 59.9%였다. 직급 차이가 성별을 근거로 극명하게 갈리다 보니 여성 보좌진 평균 임금은 남성 보좌관 평균 임금보다 136만 원가량 적다. 이 수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인지, 아무도 의원실 내부 보좌직원들의 성비를 공개하지 않는다. 형편없는 고위급 여성 보좌직원 비율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 알지만 모두 모르는 척하는. 법을 만들고 바꿔야 하는 국회부터 성별 임금격차 문제가 만연하니 사회의 성별 임금격차 문제가 해소될 리 없다.

  신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관심 없었던 분야에 눈이 떠졌다. 21쪽 맨 아래 <이대녀들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는 국회에서 정치의 현안이 모두 50대를 주축으로 한 중년 남성의 구미를 당기는 것으로 구성된 일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2쪽 아래 <페미니즘에 닫혀 있는 국회 전반이 변화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타협하고 포기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굳어 있는 의원 내부의 조직 체계는 덤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미련 없이 '좋은 직장'인 국회의원 비서직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녀는 23쪽 <국회에서 일하기 전에는 "남성 정치인들도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국회에서 일하고 난 후 그 말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이었는지 알게 되었다페미니즘 정책을 개발하는 사람이 젊은 여성으로만 상정되는 게 억울했는데, 막상 국회에 가보니 그 '페미니즘 정책을 담당하는 젊은 여성'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콱 막힌 현실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지금부터라도 그녀들을 응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24쪽 <정치는 젊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젊은 여성들의 능력을 탓하기 바빴다. 구색 맞추기로 딱 한 명

아주 소수의 여성이 정치에 진입하는 것을 허가하고 그들이 마침내 나가떨어졌을 때 "거봐, 여자들은 멘탈이 약해서 안된다니까"라는 말을 뒤에서 했다.>고 작가는 썼다. 아래 결론 문단에는 <이대녀가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자원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도 정치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71쪽 '코로나 시대의 자발적 실업자' 글쓴이는 로라 씨. 그녀는 75쪽에서 <나는 실제로 퇴사를 선택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곳 말고 다른 곳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너무나 쉽게 밀려든다. 경력다운 경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 여성에게는 훨씬 가깝고 실체적인 두려움이다.>  문단을 바꿔서 몇 줄 아래 <나는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도망칠 수 있다는 그 감각을 떠올려본다. 살고 싶어서 일을 하는데 일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다체계가 없고 과중한 업무, 부조리한 사내 문화, 업계의 폐쇄성과 보수성, 성차별과 성폭력, 그런 것들이 여성들을 일터에서 밀어낸다.>고 토로하고 있다. 

  작가는 신입사원 필수 교육으로 성희롱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었다. 온라인 강의는 훌륭했다면서 76쪽 <직장이라는 공간적 특수성과 직급 차에서 오는 권력의 문제도 고려했고,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아니라 조직의 주변인들과 조직 책임자의 역할까지 아울러 다루고 있었다. 그 친절한 강의에서 성폭력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비난해서는 안 되며, 사건을 은폐하고 묵과하는 조직 문화는 반드시 쇄신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77쪽 <기성 세대는 우리에게 'MZ세대'라는 이름을 붙여놓고는 우리가 기존의 사내 문화에 따르지 않고, 회사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승진보다 여유 시간을 중시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새로운 모습의 청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일하고 싶었고 일을 잘하고 싶었다. 업무 현장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은 청년들은 많지 않다.> 작가는 <MZ세대의 특징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자신을 배려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사회에 청년들이 나름대로 적응한 결과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젊은 그녀는 78쪽에서 <월요일에 분노하고, 대책 없는 업무에 막막해하고, 의욕 없이 무기력해하고, 회사를 불태우고 싶어 하고, 상사를 죽이고 싶어 하고, 언제나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수많은 직장인 밈(memem)들을 볼 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증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고. <그저 일하면서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세계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113쪽 노 서영 씨의 '총여학생회를 폐지시킨 권력'을 읽으면서 116쪽에서 <여성혐오를 하는 줄도 모르고 여성혐오를 하는구나. 그리고 '폭력 시위' 프레임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계속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합리와 이성의 자리를 꿰차는 식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만이 '신사'다울 수 있고 '정숙'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120쪽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그땐 공익 목적의 기구를 폐지할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서 폐지의 근거와 목적, 의도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권력을 가지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묻고 다음을 약속받을 수 있는 세상을.> 122쪽 첫 줄 <덧붙이자면 총여학생회든 여성가족부든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전담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기성의 가부장적 성별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없이도 모두가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세상을 '이성적으로' 원한다면, 페미니즘에도 권력을 쥐어주자.>라고 글은 끝이다.


 143쪽의 <'감히 여자가' 군대에 대해 말한다면>에서 144쪽 중간 "~전쟁과 평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문제였다.> 작가의 의견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드러내기 힘든, 감히 군 내부의 성추행과 성폭행에 관하여 적나라하게 파헤쳐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146쪽 <문재인 대통령이 엄중수사를 지시하고, 국방부 장관이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유가족에게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결국 책임자는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2021년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소속 한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상관의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한 글 한 부분이다. 147쪽 <2021년 한 해 동안 성추행으로 사망한 여군은 알려진 수만 다섯 명이다. 이 사망'들'에서 주목해야 할 건 피해자들이 성추행 그 자체보다 성폭력 이후 군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더 심한 고립감을 느끼고 절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150쪽 아래 <성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성평등한 군대를 만드는 것도 모두 여성의 일로 맡겨두지는 않았으면 한다. 성평등은 사회적인 과제이며 군대도 하나의 사회인 만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208쪽에서 신 민주 작가는 <선택은 개인의 몫이겠지만, 나는 여자들이 판을 깔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시도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신념과 권력, 둘 중 하나를 포기하기를 종용하는 사회는 너무 지겨우니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하면 된다. 때로는 어설프고 때로는 의욕만 앞설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서로의 지원군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실수는 성장 가능성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요약하자면 정치판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학교에도 #'판을 까는 여자들'이 필요하다.>  송 은이 씨는 <후배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거침없이 "해보자!"라고 외쳤고, 그런 시도가 아무도 해치지 않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주었다. 어느 모임에서든 송은이가 나타나길 바란다.>

  

  위의 문장들은 #판을 까는 여자들'의 핵심 주제들이다. 여성혐오를 하는 줄도 모르고 한다는 말, 결국 남성도 혐오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생각을 바꾸어본다면 여성과 남성 뿐인 이 세상에서 '여성존중' 은 '남성존중'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폭력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조차 모른다는 말도 된다. 내가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나 또한 존중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남녀를 불문하고 존중 받으며,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작가들이 추구하는 미래를 지향하며, 멀리서 그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판을 까는 여자들, #신민주, #로라, #노서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2기-판을까는여자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