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세상 중세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그림 속 중세 이야기,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중세시대의 문화라든가, 작품에 대해 무지한 나는 중세 이야기를 좀 더 사실적으로 알 수 있는 이 책을 선택했다. "르네상스 시대엔 이랬다~ 저랬다~" 식의 카더라는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그 중 사실은 몇 개나 될지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혁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마케팅에서 디자인을 재껴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에는 그림이 들어간다. 하나의 선도 여러 번 겹치면 그림이 되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 즉 디자인이 된다. 하지만 그 옛날, 그림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 몇이나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그 시작은 미약했을지 모른다. 그림쟁이라는 호칭이나 아래로 보는 괄시의 눈빛은 오래 전 화가의 아픔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돈 못 벌고, 재료비로 돈이 나가고 불면의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하는 직업으로 많은 이들이 꺼리는 직업 화가. 우리나라 과거의 그림쟁이는 멀리 내다보면 바람의 화원에 나오는 인물들을 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현대에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해보면, 영화관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인물화를 자세히 밀도있게 그려내는 화가를 꼽는다면 말이다.

 

나는 작품에도 고급과 저급이 있다고 본다. 저급은 어떤 것이다, 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고급이라고 보는 작품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벽에 걸어놓았을 때, 주위 환경에 비해 존재감이 있는 작품. 그것이 고급이라고 느껴진다. 내게 있어 고급의 그림이란 편대의 작품보단 먼 중세시대에 탄생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리고 저평가된 현대의 그림도 분명 있겠지만 경이로움이나 고결함, 그리고 시대상을 잘 나타낸 작품을 보면 신비롭다. 뭔가 태마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아크릴 물감으로 범벅된 인물화나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을 느기곤 한다. 유럽 왕실의 유전병을 잘 나타내는 그림도 근친상간의 단점을 드러내는 멋진 작품이다. 그리고 바토리에 관한 무수한 괴담을 담은 그림들도 공포에 비례하게 멋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큐피드와 푸시케가 단연 돋보인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관련된 그림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야기가 존재하는 그림은 많은 상상력과 재미를 안겨준다. 그래서 그 그림 속에 빠져들게 되면 문화 역시 그림으로 각인되며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것 같다. 중세 시대의 그림은 대부분 전라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그림은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여자의 몸을 드러낸 것도 있다. 나체의 인간의 모습을 조금의 부끄러움도 못느끼는 듯 그려낸 걸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올 누드가 화폭에 가득한 그림이 오히려 시선이 분산되어 덜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전신을 그린 작품을 계속 보면서 점점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아름답다는 찬사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경박하거나 음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그 당시 문화 역시 힘을 갖는다. 램브란트의 그림엔 인간의 이중성, 예수의 슬픔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십자가라는 하나의 아이콘은 숭고함까지 지녔다. 이미 십자가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뿌리깊게 자리하지 않았는가.

 

르네상스의 그림에는 종교와 쾌락과 죽음과 희생, 그리고 사랑을 담은 작품들이 가득하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죽음을 앞둔 그녀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엔 카톨릭 교도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았나, 라는 저자의 생각도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가려진 그녀는 머리가 놓일 참수대를 손으로 찾고, 카톨릭 신부 복장을 한 사람이 참수대로 친절하게 그녀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승리한 유디트>. 이 작품은 인내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논개에 해당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인은 손에 칼을 들었고 그녀의 왼쪽 모서리 끝에 적장의 수급이 자리한다. 아니, 그녀의 손에 들려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오싹하지만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게 되면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것이 그림이 갖는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밖에도 많은 중세의 모습이 화폭에 남아있다. 그 당시의 이야기, 그 때의 문화와 메세지가 가득 담긴 그림들이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림들을 마주하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마치, 책 속의 작은 미술관을 다녀온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미술관에서 지금 본 그림들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