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타 왕조현
유경선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그녀의 이름은 왕조현.

그녀의 이름은 왕조현이다. 보통, 왕조현이라 하면 천녀유혼의 히어로! 홍콩의 미녀스타 왕조현을 떠올릴 것이다. 지명도를 무시 못할테니까 그녀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왕조현'이 아니다. 그저 동명이인일 뿐.

그것은 마치 영화배우 김태희와 이름이 같은 민간인을 떠오르면 대입이 딱 맞을 것이다. 명사의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괜시리 동명이인으로 손해보는 사람이 생겨나는 건 사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그녀 역시 마찬가지. 네임벨류에 맞지 않는 평범한 외모 때문에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 왕조현이란 이름을 얻은 대가치곤 너무 크지 않나. 사람들의 비웃음. 썩은 미소 등등.

그런 결과를 만드는 건 신이라도 어쩔 수 없다. 미녀스타의 이름을 지녔다는 죄로 감내해야 하는 일종의 과제였으니까.

그런 그녀의 직업은 소규모 영화사의 홍보 팀장. 7년 넘게 한 우물만 판 댓가로 팀장직을 꾀 찼지만, 그녀의 목표는 프로듀서였다.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부푼 꿈을 안고 영화계에 발을 디뎠지만, 여자는 물론 남자에게도 3D업종임을 여러 일화를 통해 경험한다. 처음 입사할 때와는 다르게 해마다 잊지 않고 늘어나는 나이는 벌써 서른을 훌쩍 넘겼고, 한 남자만 바라보는 순애보적인 사랑도 하루 아침에 남이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가 되기엔 먼 얘기였다. 그러니 의욕은 점점 후퇴하고 게으름은 전진한다.

어찌된 게 그녀의 앞날엔 먹구름이...

싸가지 패셔니스타 장민혁의 무협조가 태반으로 이어지고, 천방지축 아이돌 윤찬영의 음주운전 사고가 터지고, 뒤이어 더 큰 핵폭탄 급 라이벌 효령이 끼어들어 악성기사를 퍼뜨리는 등. 가관이 아니다. 거기다 늘상 보는 사람이나, 가끔 부딪히는 사람이나, 죽고 못사는 친구나 누구하나 그녀를 궁지에 몰아 넣지 않는 자가 없다. 자꾸만 눈에 가시임을 자처하는 라이벌 한효령과 무좀걸린 발에 약을 도포하는 의식을 시작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입만 열면 윽박지르기 일쑤인 반 대표, 많은 기자와 영화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연이어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 도움주려던 친구의 실수나, 제 딴엔 의욕이 넘쳐 저지르는 부하 직원의 만행이나 하나 같이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결과를 낳는다. 과연 그녀는 앞날을 어찌 해쳐갈까?

 

<올.미.다>와 <온에어>의 장점을 한 권에 뒤섞은 듯한 하모니.

영화판을 소재로 한 무비스타 왕조현은 띠지의 홍보문구대로 정말 재기발랄한 문체가 빛났다. 영화사 홍보팀장 왕조현에 맞게, 제작발표회부터 영화가 막을 내리기까지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로맨스도 유쾌하게 이어진다. 일하는 여성의 삶을 재미 요만큼, 감동 요만큼, 리얼리티 요만큼 담아서 풀어놓은 듯이.

시종일관은 아니지만 가끔 웃음이 뭍어날 수 있는 책이었다. 1인칭 시점이라 몰입감도 좋았고 대체로 공감이 많이 갔다. 명품 옷에 대해 열망하는 것을 뺀다면 말이다. 상사에게 깨지고, 무능한 부하직원은 눈치없이 굴기도 하고, 거기다 새로 들어온 학벌이나 조건 좋은 부하직원은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데 사장 또한 인정해주는 분위기라면? 뭔가 공감간다고 여기는 사람 참 많을 것이다. 나이는 점점 차오르는데, 오랫동안 사귄 연인은 어느 순간 남이 되어 직장이란 곳에서조차 마주해야 한다면 그만큼 씁쓸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위기의 순간에 아낌없는 조언과 자신의 옷과 구두, 백 등을 아낌없이 빌려줄 줄 아는 의리파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왕 씨 성을 가진 모임인 '스타킹'의 일원으로 조현과 친구들이 한 자리에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외람되지만 마치 올드 미스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확실히, 주인공 왕조현은 미자(예지원)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왜냐? 속으론 심사가 뒤틀리더라도 앞에선 잘 참고 내색하지 않는다. 분하지만 상황에 맞게 행동한다. 그것이 그녀의 철칙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는 프로근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 처자들의 수다에서도 올.미.다 성격이 잘 드러난다. 뭐든 얘기 잘 들어주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며 따뜻하게 응수해주는 선희는 김지영. 그리고 카리스마에 한 성격하는 도연은 오윤아와 판박이 같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뒤에 나오는 노브라, 배 부른 모습 같은 것에서도 살짝. 문란한 사생활을 담은 건 아니지만 성격만 본다면 그런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표절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성격구조나 캐릭터가 딱 떨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

그런데 거기다 살짝 드라마 <온에어> 스타일이라고 할까? 유명 대사인 "분칠한 것들은 믿으면 안 된다." 라는 대사가 몇 번인가 등장하고, 분 칠한 것들에 해당하는 인기 절정의 미남 영화배우 장민혁도 등장한다. 실제 배우로 따지면 조인성 정도 수준이 아닐까 싶다. 민혁은 대외적으로는 친절하고 매너 넘치는 이미지의 톱 배우였고 패셔니 스타로 등장하니까. 물론, 실제 성격은 싸가지로 통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조인성 씨가 싸가지라는 건 아니다.) 그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정 많고, 좋은 일도 하며, 자신을 변호하는데 서툰 사람이라는 걸 알테지만. 그런 소재가 쓰여지다 보니 아무래도 기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건, 홍보팀장 왕조현을 무비스타 왕조현으로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

아무튼 결론은, 무리없이 읽히고 재미가 살아있는 유쾌한 소설이라는 거. 한 번쯤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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