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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원정대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평점 :
비루하다 (鄙陋--) [비ː루하다]
[형용사]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딱 이 말이 떠오르는 청춘들이 이 책에 득시글득시글,, 모여 있습니다. 읽다 보니 습지에서 서식하는 비루한 청춘들의 웃기고 눈물 나는 관찰일기 <습지생태보고서>가 문득 떠오르더군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표현하기 어색한 젊은 날의 욕망도, 윤곽을 알 수 없는 미래도,,, <조공원정대>에 존재했으니까요. 왠지 더 눈물 나는,,, 능청스러워서, 더 말이죠. 배상민 작가는 그런 페이소스 넘치는 능청스러운 유머로 IMF와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 비정규직의 비애, 청년실업의 난관, 빈곤 속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청년들의 희로애락을 풀어갑니다.
우리 세대들이 그러하듯 <안녕 할리>의 주인공 ‘나’ 역시 S대학, S전자로 이어지는 ‘S라인’을 위해 엄마의 조종 하에 자신의 감정과 욕망은 숨긴 채(드러내지 못한 채), 대학을 가고(물론 S대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취직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가 키우는 개 ‘팔팔이’와 자신을 은연중에 동일 시 함이 느껴지는데요. 거세를 당하고, 성대 수술을 한 채 모든 욕구를 저지당한 채 죽음을 맞이한 팔팔이,,, 불자였던 엄마가 팔팔이 다비식을 거행하고 나온 사리 백 과,,, 순간 주인공 ‘나’는 더 이상 뭔가를 참고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서른 둘 최초로 엄마 말을 듣지 않고 할리 데이비슨을 구입하고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낸 채 오토바이 가게를 차렸다가, 할리 데이비슨을 탄 퀵 서비스 맨으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느껴지는 자괴감,,,
<조공원정대>를 결성해 소녀시대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상경한 ‘나’와 만석, 칠성,,,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백수들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합니다. 이 와중에 ‘나’는 바리스타가 되려했지만 다방 레지로 전락한 ‘미선’을 임신 시킨 상태로 그녀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커피 루왁을 소녀시대 조공으로 바치기 위해 훔쳐 서울로 올라온 인물,,, 결국 소녀시대도 만나지 못하고 여비도 떨어진 셋은 토니, 제리, 티파니라는 이름으로 패밀리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며 고향에 다시 내려가지도 못한 채 서울에 얕게 뿌리내리며 다시 토니, 제리, 티파니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어중간한 대학을 낮은 학점으로 졸업하고 피자 배달 일을 하고 있는 ‘나’,
수도권의 이름 없는 대학을 나와 인턴 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나’,
권투 선수였던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헤드기어를 쓰면 초능력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나’,,,
잘난 것 없는, 아니 못났다못났다 이렇게 비루한 젊은이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비판해 갑니다. 하류 인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남루하고 비참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며 야유를 던지고 있는 것이죠.
대학시절 외환위기라는 날벼락을 맞았던 비운의 IMF세대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년과 장년 고용 창출이라는 정부 정책의 틈바구니 속에서 유독 악화된 고용사정을 겪으며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더 남 얘기 같지 않았던 <조공원정대>였습니다. 그 남루하고 비루한 사회를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생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뒤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이라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요. 아직은 우리 생에 온기가 남아있을 거예요. 믿어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