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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파과[ 破瓜 ]
오이 과(瓜)자를 세로[縱]로 가르면 두 개의 팔(八)자가 돼 이것을 합하면 16이 되고, 곱하면 64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 破 : 깨뜨릴 파 瓜 : 오이 과
파과지년(破瓜之年)이라고도 한다. 파과지년이란 여성은 16세, 남성은 64세를 가리킨다. 파과란 말은 여성이 성인이 되어 남성과 처음으로 육체관계를 가진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또한 파과기(破瓜期)란 여자가 월경(月經)을 처음 시작하는 나이를 가리키며, 사춘기 또는 청춘기와 같은 뜻으로도 사용한다.
생소한 단어는 사전을 먼저 들춰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단어의 뜻을 곱씹어 본 듯하다. 그리고 60대 청부살인을 업으로 삼아 일하는 여인 <조각>을 함께 곱씹어 보게 됐다.
열다섯 살에 류를 만난 이후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단숨에 처리하며 업계의 대모의 위치에 이른 프로페셔널한 인물 <조각>, 겉모습은 너무도 평범한 그래서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묻혀 지나가면 그저 노인이려니,,,하고 지나갈 정도 지극히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언어로 청부살인을 하는 ‘방역업자’이다. 60대 노부인 킬러라,, 킬러라하면 20대 건장한 남성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말이다. 어찌됐든,,, 깔끔하면서도 단아하게 나름의 사냥법으로 방역에 나서는 그녀가 어느 지점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녀 스스로 파과[ 破瓜 ]를 시작한 것일까?
오랜 세월 감정을 차단한 채 냉혈한으로 살아왔던 <조각>은 육체와 정신이 늙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무너진 평정심은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게 됩니다. 물론 그녀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듯 싶지만 말이죠. 아무것도 지킬 것이 없었던 그녀에게 무언가를 지켜내야만 하는 것을 품게 되고, 그 품음은 그녀를 흔들고, 또 다른 킬러와 목숨을 건 대결로 이어집니다.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 그녀는 흔들림 없이 그 대결에 응하면서 말이죠.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의 시선을 통해 늙어감과 쇠함을 그려가는데요. 왠지 그 속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아픔을 숨기고, 감정을 숨기고, 무표정한 채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틈이 벌어지면 봇물 터지듯 감정들이 쏟아지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그녀 <조각>을 보며, 참 많이 다독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만큼 감정이입의 요소가 많았단 얘기겠죠.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참,,, 다감한 듯 날카롭고, 잔잔한 듯 서늘합니다.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 소설의 말미, 네일아트를 받는 조각의 모습을 보며 삶의 정글 속 으깨진 그녀의 영혼이 다시금 깨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이라도 말이죠.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네요. 왠지 이 말은 그녀에게 어울리진 않을 것 같지만,,, 아직 청춘이시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