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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인간에게 강제로 뭔가를 시키기 위해서는 유혹이나 협박이 가장 좋지.
하지만 협박하려고 해도 너에게는 약점이 없어.
내 주위에서는 네가 반드시 지켜내려는 소중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아.
그리고 너는 자신의 목숨에도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젊고 아름다운 <왕국>의 주인공 ‘유리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자, 가장 부족한 말이란 생각이 든 대사다.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유리카에겐 어린 시절부터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이유 모를 분노에 더 익숙한 아이였고, 그런 울분에 젖어든 채 살아간다. 사회 저명인사를 유혹해 치명적 약점이 될 만한 사진과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가짜 매춘부 역할이 그녀가 맡고 있는 일이다. 보육원 친구 에리가 교통사고로 죽고, 에리의 아들 쇼타마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죽어가게 되자, 쇼타의 치료비를 대기 위해, 어떤 조직인지는 명확치 않지만 ‘야다’라는 사람에게 일을 의뢰받고 임무를 수행하면 그녀에게 거액이 주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그녀의 운명을 손에 쥐고 뒤흔드는 ‘야다’의 적 ‘가자키’,,, 하지만 그녀는 쇼타에 대한 배려나 에리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쇼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운명 같은 것을 어떻게든 배신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일을 하지만, 쇼타는 죽고, 유리카는 운명을 거역하지 못한다.
문득 그녀가 쇼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것은 쇼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에 극한의 선택을 감행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약점도 없고, 목숨에 집착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건, 나만의 느낌일까?
“그건 어쩌면 부조리한 복수였는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에 대해서라기보다 나를 둘러싼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라면 죄다 부서져버려.
버림받기 전에, 관심 없다고들 생각하기 전에, 내가 이 세계를 배신해버리면 된다.
나는 몸에 열기를 느꼈다. 뜨겁게, 어떻게도 할 수 없을 만큼 뜨겁게...”
그녀가 운명에 저항하며, 운명의 자유를 느낀 순간,
그리고 잡히지 않는 운명의 끈을 팽팽히 당긴 순간이 바로 그 때였으리라.
“나는 무엇에 번롱당하고, 무엇을 배신하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친 것일까.
이제부터 나는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야 한다.
그 시간 앞에 또다시 그런 것이 찾아온다면 나는 그것을 붙잡을까.”
아. 마. 도... 단. 단.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