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은 순간,,, ‘,,, 다시 읽어야겠구나.’란 마음과 아냐,,, 이대로 이 구절 그대로에 눈길을 주고 그저 느낌 그대로를 가져가도 괜찮아.’란 마음,,, 두 마음이 자리 잡는다. 그만큼 모호하고 몽환적인 배수아의,,, 나에겐 그녀의 첫 소설은 그렇게 자리 잡았다.

 

그들은 거대한 사각형의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데, 우연히도 그 때 모든 거주자가 동시에 잠들어 있다. 그들은 부재자의 행방을 모른다. 그 도시의 이름은 비밀이었다. 모든 창이 어둡게 닫혔으며, 모든 창이 침묵하고, 모든 창은 보이지 않으며, 모든 창이 명상에 잠겨있는 도시였다. 그들의 눈앞에 검은 동상이 서 있는 역 광장이 달의 표면인 양 떠오른다.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가? 바람도 불지 않는데 깃발이 허공에 곧추서 있다. 청회색 빛 구름 속으로 까마득하게 치솟은 굴뚝, 광장, 대기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밤기차, 이름 모를 장군의 동상, 그리고 텅 빈 아케이드들의 거리. 흰올빼미의 울음, 허공을 가로지르는 백색의 번갯불, 검은 포장을 씌운 수레, 그리고 죽은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 79

 

그저,,, 단 한 단락만으로도 그녀의 포스트 모던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것은 김동리의 <무녀도>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그 어디 중간쯤 비밀처럼 자리하고 있다고나 할까?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내용들, 소설인 듯 에세이 같은 느낌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눈 먼 부엉이 아야미와 극장장,,,처럼 말이다.

 

소설은 폐관을 앞둔 서울의 유일무이한 오디오 극장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김아야미를 통해 기억과 꿈, 그리고 비밀스러운 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인가 기승전결의 소설 형태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 기대는 가차 없이 버려야할 것이다. 단지 아야미와 극장장, 여니,,,, 등장인물을 통해 계속 반주와 변주를 오가며 거미가 그물 치 듯 가느다란 실과 같은 아름답지만 낯선 문장들로 독자를 미로로 안내한다. 물론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로 말이다.

 

독자에겐 다소 다감하지 않은 작가일른지도 모르겠다. 배수아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과 상상력은 시공간을 초월해 독자를 비밀의 도시, 또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통해 흔치 않은 즐거움을 제공한다. 수수께끼 같은 흐름을 풀려하기보단 그저 그 흐름에 맡기고 읽어내려 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매혹적인 환상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 내 서평 역시,,, 모호하고,,, 몽환적이겠군,,, - -;;; 하하)

 

나직한 목소리로 아야미가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결국 꿈을 기록한다는 것은 꿈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꿈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꿈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꿈의 기록을 읽는 것 또한 꿈의 이해도 분석도 될수 없다. 꿈의 기록을 읽는다는 것은 그 꿈에 참여하는 것이다. 꿈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재현을 거부하는 존재를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환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환영의 출처를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니 포기하라. 포기하고 눈을 감아라. 그러면 한나절쯤 아주 희귀하며 기이한 꿈에 잠겨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흔치 않은 즐거움을 줄 것이다. sheer pleasure. 한국어 산문 문학이 주는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성취감으로 쾌락이 아닌, 지연과 반복과 몰입이 가져다주는 쾌락.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 즐거움은 프로이트 이전과 이후의 꿈이 우리에게 제공했던, 그리고 제공하는 것이니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성적 억압, 쾌락 원칙과 죽음 충동 따위는 잠시 잊자. 분석을 멈추고 몸을 맡겨라.” - 212쪽 김사과

* 그녀의 글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면

책 맨 뒤편 김사과 작가의 서평을 읽고 다시 페이지를 펼쳐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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