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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평점 :
“내 뱃속에는 모종의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그 놈이 모든 걸 망쳐놓았습니다.”
러시아 문학 혹은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식가이자 식도락가였던 작가 고골은 이렇게 자신의 식욕을 ‘악마’라 표현하며 글 쓰는 일 외엔 먹는 일에 올인 했고, 이러한 자신의 미식에 대한 탐욕을 혐오해 죄책감에 시달리다 말기엔 영혼 정화를 위해 금식과 기도를 되풀이하며 거식증에 시달리다 결국 영양실조가 원인이 돼 사망했다.
“그가 달려가는 곳은 탈롱의 레스토랑. 벌써 카베린이 와 있으려니 확신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병마개가 천장으로 치솟고, 술병에선 혜성 포도주가 철철 흐르고, 식탁 위엔 피투성이 로스트비프며 프랑스 요리의 결정판 젊은 날의 사치인 송로버섯이며, 스트라스부르산의 썩지 않는 파이가 신선한 림부르흐 치즈와 황금빛 파인애플에 둘러싸여 있었다. 커틀릿의 뜨거운 기름에 목이 타니 샴페인 한두 잔 마시면 좋으련만.”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한 대목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오네긴이 오후면 찾아가던 프랑스 레스토랑의 풍경은 페테르부르크의 번화가에 실존했던 곳으로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탈롱이 1810년대 중반에 개업했고, 당대 귀족들이 즐겨 찾았으며 푸시킨도 즐겨 찾던 레스토랑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는 이렇게 푸시킨부터 솔제니친까지 10명의 러시아 문학 거장들이 음식을 어떤 코드와 상징으로 자신의 문학세계에 끌어들여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음식문화는 유럽을 향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표트르 대제 이후부터 시작된다. 즉, 지리적으론 유럽과 접해있지만, 유럽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돼 있던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이후 촌스럽고 어리숙한 거인 러시아에서 세련된 유럽신사로 바뀌었던 표현이 나올 정도로 행정, 교육, 산업, 문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급변하게 된다. 그 중 두드러진 변화가 서구화 정책으로 시작된 ‘남의 것’과 ‘나의 것’의 대립적 관계였다. 그리고 저자는 문화사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음식 문화를 문화 읽기의 기본코드로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혁명과 내전을 거쳐 소비에트국가가 자리 잡기 까지 역사의 흐름을 따라 ‘남의 음식 대 나의 음식’, ‘육체의 양식 대 영혼의 양식’, ‘옛 음식 대 새 음식’ 으로 변화한 식문화와 음식, 그리고 상징적인 코드로 형상화한 작가와 작품을 꼼꼼히 짚어보고 있다.
시대에 따라, 작가에 따라, 음식은 다른 함의를 지님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요리가 고급 요리로 간주되던 시기에 러시아식 양배추 수프는 빈곤함의 상징이었지만 유럽 식문화가 러시아에 완벽하게 정착한 19세기 중후반이 되면 오히려 러시아 수프는 절제의 미덕을 표출하는 긍정적인 기호가 된다. 20세기 초엽엔 지루하고 범속한 일상, 타파해야 할 과거의 구습을 상징되기도 한다. 또, 작가에 따라, 푸쉬킨처럼 프랑스 요리에 대한 지식과 러시아 음식의 소박한 맛, 유럽 문학의 세련된 멋과 러시아 민담의 구수한 멋을 통해 남의 것과 나의 것의 충돌과 융합을 문학으로 재창조하는가 하면, 프랑스 문화에 대한 모든 것을 불쾌하게 여기며 거부감을 드러냈던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 나쁜 인간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지껄이고 프랑스식 옷을 입고 프랑스 음식을 먹고, 프랑스적인 것에 푹 빠져 있던 러시아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을 지적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통해 음식을 생명의 양식이자 삶과 죽음을 연결시켰는가 하면, 솔제니친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음식을 통해 인간의 고결함을 보여주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시점을 막론하고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소통의 통로임이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는 다소 무거운 코드로 다가올 수 있을 런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이란 소재와 문학의 향연이라는 자체만으로 우리의 미감을 깨우기에 충분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