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대의 탄생 - 기획이 곧 예술이다
소홍삼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공연장을 짓는 10년간은 그 나라, 그 도시의 향후 100년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총체적 문화학습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자칫 게으르거나 방심하여 주어진 책임을 소홀히 한다면 그 도시, 그 나라에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머리말
저자가 외국의 한 컨퍼런스에서 나온 말이라며 머리말에 적어놓은 글귀가 “둥~” 머리를 깨운다. 그렇다. 커다란 틀에서의 문화, 이 문화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뭔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놔야할 것이다. 그 나라, 그 도시의 향후 100년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총체적 문화학습의 시간을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일 테니 말이다.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시대 문화의 흐름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이 바로 그 기획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치열한 현장, 화려한 무대, 드높은 명성, 그리고 손익계산서까지 모든 것을 진두지휘함과 동시에 만들어 내야하는 기획,,, 기획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저자는 그동안 발간된 서적들이 이론적 기반이 강하면 현장감이 부족하고, 현장성이 강하면 이론적 토대가 약하다는 점을 감안함과 동시에 공연 기획에 대한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분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예술경영열전>이란 책 제목이 무색치 않도록 연극, 뮤지컬, 무용, 오페라, 극장제작, 복합 장르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10개의 개별 공연 사례들을 통해 기획배경, 추진과정, 에피소드, 비하인드, 홍보마케팅, 성공과 실패 원인까지 분석해 놓았다. 즉, ‘문화의 힘을 믿고 열정과 창의를 바친 이들의 성공과 실패 이야기를 성실하게 분석해 놓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한 챕터 한 챕터, 정말 꼼꼼히 시작 단계부터 배경, 진행과정, 실패와 성공 요인까지 일목요연하게 풀어놓았기 때문에 기획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 봐야할 필독서가 되지 싶다. 또한, 그간 공연을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어떤 비하인드가 숨어있는지 흥미롭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 그럼 어떤 공연들이 소개돼 있을까?
먼저, 가난한 예술=연극이란 통념을 과감하게 부셔버린(뭐,, 물론 지금도 대중예술계로 치면 가난한 예술은 분명하겠지만), <연극열전>이다. 사실,, 연극인과 예술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은 일반 직장인보다 몇 배 우위라고 한다. 공연예술이 갖고 있는 생명력과 마력 때문이리라. 이런 한국 연극이 2008년 100주년을 맞았다. 그 100주년 중 최고의 기획 프로젝트가 바로 2004년 등장한 <연극열전>이라 하겠다. 관객에 의해 이미 검증된 유명 연극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로 15개 극단의 15개 작품이 참여한 일종의 연극제였다. 당시엔 다소 파격적인 연극제였지만, 과감함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 히트를 기록했고, <연극열전>은 정극 레퍼토리의 활성화와 좋은 공연을 통해 연극관객을 개발해 냈고, 대학로에 가면 언제나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다는 흐름을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연극인과 관객 모두 윈윈한 기획이었다 할 수 있겠다. 현대무용의 거장과 LG 아트센터의 만남 역시 국내외 예술가와의 라인업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쌓아온 열정과 진정성의 교감이 좋은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독일 피나 바우쉬의 <러프컷>을 만들어 냈다. 이 외에도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나 <오폐라의 유령> 등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거장의 작품을 통해 공연예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남이 하지 않은 것, 생각은 했을지 모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 실행하기 까다로운 것을 특화하자.” - LG 아트센터 김의준 전 대표의 말이다. 역시, 기획은 과감함과 신선한 발상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 주고 있음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공연이 있는가 하면, 운동장 오페라의 비극이라 불리는 <투란도트>, <아이다>는 공연 기획에 있어 한탕주의 기획은 지양해야함을 일깨워줬고, 일본공연기업 <시키>의 한국진출작 <라이온 킹> 역시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였음을 분석해 놓았다. 그리고 추억이 악극의 봄날은 다시 올 수 있을지, 지역문화예술회관의 역작 <남한산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의 고풍스런 멋과 전통을 지닌 동춘서커스는 어떤 기획이 필요한지,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아이콘 꽃미남 <앙상블 디토>의 성공과 혁신적인 마케팅이 클래식 한류를 어떻게 낳았는지, 컨셉의 재발견과 공간의 확장이란 틀을 벗어난 기획인 고궁을 무대로 다시 태어난 <대장금>, 명성황후 이후 한국 뮤지컬의 진정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안중근>까지,,, 다양한 공연과 예술의 기획을 통해 우리나라 공연예술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예술경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무대의 탄생>은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공연예술경영에 대한 이야기로 예술과 관객 사이에서의 균형감각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시대와 소통하는 통찰력 있는 기획에 대한 고민이 왜 필요한지,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 있는 기획의 필요성, 그리고 기획자와 예술가 간의 상호 유대관계 즉 신뢰의 필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하지만 독창적인 기획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음,,, 이렇게 보니,,,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겠구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보는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뼈와 살을 에는 고통이 따라야하니 말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 공연예술계의 미래에 환한 빛이 솟아나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