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옌렌 커, 그와의 첫 만남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였다.
중국 최고의 지도자 마오쩌둥이 발표한 유명한 정치 슬로건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문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놓고 에로틱함을 조성한 소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마오쩌둥의 정치 구호를 성적인 묘사로 전락시키고 희화화함으로써 개인의 행복보다 혁명의 대의와 사회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중국군의 책무를 담은 국민적 구호를 왠지 비하하는 듯, 아니,, 비하시켜버린 소설은 당연히 금서의 순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 출간 당시 당국의 판매금지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물론 회수 이유는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5금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화려한(?) 전력을 갖고 있는 옌롄커의 작품인 <물처럼 단단하게>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금서인 <인민을 위해 복무라하>의 전작으로 이 역시 금서 판정을 받았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옌렌 커는 현재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고 있는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는 최고의 소설가로 1978년 인민 해방군에 자원해 2004년까지 근 26년간 군대에서 생활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군대에 들어간 그 해부터 문학을 시작해 1980년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후 <정감옥>, <최후의 여성 지식청년>, <일광유년>, <물처럼 단단하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등을 7권의 장편 소설과 <연월일> 등 수많은 중단편 소설이 실린 10여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사실,,, 금지조치가 호기심을 더 자극하고, 강압적 탄압이 외려 국내외 모두 화제가 되면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으로 돌려보는 필독서가 됐고, 전 세계 10개국에 소개되면서 떠오르는 중국 작가로 알려진 옌렌 커는 루쉰 문학상을 두 차례나 받았고, 라오서 문학상을 비롯한 20여 개의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이른바 '일급 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영국의 권위 있는 맨 부커 국제 문학상의 2013년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 번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중국 작가 부호 리스트' 20위로 올랐다고 한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비교적 긴 장편 소설이지만, 의외로 내용은 간단하다.
문화 대혁명이 한창인 1967년, 스물다섯 살의 인민 해방군 가오아이쥔이 퇴역하고 고향인 허난 성 뤄양 청강 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마을 간부 자리를 주겠다는 지부서기의 꼬임에 빠져 그의 딸인, 진정 여성미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내 청구이즈와 결혼한 아내와 두 아이가 그를 서먹하게 맞이하고, 마을의 권력가인 장인은 결혼 당시 약속했던 간부 자리를 주지 않은 채 냉대한다. 낙후된 고향에서 당의 새로운 정신에 따른 혁명을 실천하고, 장인 대신 간부가 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가오아이쥔의 앞에 학교 선생 청진동의 부인이자 전임 진장의 며느리인 아름다운 샤훙메이가 나타난다. 이 두 남녀는 각자의 가정은 잊은 채 순식간에 위험한 사랑에 빠져들고,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김과 동시에 자신들의 장인과 시아버지가 정점으로 있는 청강진의 구체제 간부진을 몰아내고, 자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피’의 세대 교체를 목표로 청강 대대 혁명동원회라는 이름의 비밀 집회를 열고, 봉건주의 계급의 사상과 세력의 상징을 몰아내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뜻하지 않은 복병에 부딪쳐 첫 ‘혁명’ 시도가 무참히 실패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권력을 향한 혁명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들은 그렇게 혁명의 동지이자 육체를 갈망하는 내연 남녀로 생을 불태워간다. 그렇다면 이 두 남녀의 권력을 향한 욕망과 성을 갈망하는 욕정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옌렌 커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처럼 철저히 절제해야할 대상이었던 성욕을 통해 전통에 대한 저항을 얘기하고 있다. 문화 대혁명, 즉 혁명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진 온갖 추악한 몰골을 기본적인 욕망인 인간의 성욕을 거침없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추악함과 함께 그들이 더 큰 권력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희생양이 되는 파국을 보여준다.
소설은 혁명 보다는 혁명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성욕을 발산하기 위한 인간의 추악한 면모만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가오아이쥔과 샤흥메이의 탐욕과도 같은 사랑은 그들만의 혁명이자, 그들만의 사랑법이었다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