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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았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12월
평점 :
“1986년과 1987년에 갤러데트에 갔을 때 나는 놀랍고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그전까지는 순전히 청각장애인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를 본 적도 없었고, 수화가 어쩌면 정말로 완전한 언어, 즉 사랑과 연설과 구애와 수학 등에 다른 언어와 똑같이 적합한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다.(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수화로 진행되는 철학과 화학 수업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진행되는 수학 수업도 보고, 청각장애인 시인과 수화로 지은 시도 캠퍼스에서 보았다. 갤러데트에서 제작되는 연극의 깊이와 폭도 대단했다. 학생들이 드나드는 술집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끼리끼리 대화를 나누며 손을 사방으로 날듯이 움직이는 놀라운 풍경도 보았다. 이런 광경들을 모두 본 뒤에야 비로소 나는 청각장애에 대한 ‘의학적’ 견해(청각 장애를 ‘치료’가 필요한 상태 또는 결함으로 보는 것)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완전한 언어와 자기들만의 문화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문화적’견해로 옮겨갈 수 있었다. 나는 갤러데트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심지어 목가적인 느낌도 들었다. 일부 학생들이 따스하고 아늑하게 자신을 보호해주는 이곳, 작지만 완전하고 자족적인 이 세계의 아늑함을 떠나 자신들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불친절한 바깥세상으로 떠나기 싫어한다는 말이 그다지 놀랍게 들리지 않았다.” - <목소리를 보았네.> 179쪽-181쪽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 Seeing Voices>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수화’와 관련된 내용의 서적입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대학인 갤러데트 대학을 접하면서 올리버 박사는 매혹과 경악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위의 글에서도 접했듯이 수화를 완전한 언어로, 청각장애를 의학적 견해의 치료가 아닌 완전한 언어로 자신들 만의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공동체로 ‘문화적’ 견해, 즉 청각장애인들을 부족적 관점에서 다루는 새로운 관점을 통해 우리의 생각에도 변화를 일게 만듭니다. 일례로 청각장애인들이 지금까지 항상 어디서나 ‘장애인’이거나 ‘열등한’ 존재로만 인식되었는지 의문을 품고 마서스비니어드 섬을 찾아갑니다. 이 지역은 250년 동안 일종의 유전적 청각장애가 존재하고 있어 모든 주민이 수화를 배워 귀가 들리는 사람과 청각장애인이 아무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섬이었는데요. 흥미로웠던 것은 이 섬의 마지막 청각장애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귀가 들리는 사람들이 수화를 계속 보존하는 경향을 보였고, 자신의 생각을 혼잣말처럼 수화로 표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화를 1차적인 언어로 배운 사람의 뇌와 정신은 평생 동안 수화를 계속 보존하고 사용하며,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 보존력은 마찬가지였다는 거죠. 수화가 뇌의 기본적인 언어임을 확신하는 순간이었고, 독자 역시 전율이 일어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사실,, 수화를 완전한 언어로 생각했던 이들이 얼마나 됐을까요? 저 역시 이 책을 통해 수화를 언어학적으로 완벽한 언어이자 아름다운 언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됐으니 말이죠. 역사적으로도 수화가 언어학적으로 관심을 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말 윌리엄 스토키가 수화의 어휘와 구문을 완벽하게 증명해내면서 '청각장애인은 벙어리'라는 편견을 깨는 데 첫 발자국을 남겼고, 이후 1988년 미국 갤러데트대학에서 청각장애인 시위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행정적 변화, 교육적 변화, 사회적 변화, 심리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습니다. 수화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언어였음을 깨닫게 해 준 것이죠. 고요한 외침이 아닌 온전한 언어로의 인식의 변환을 가져다 주었달까요?
책을 보면서 문득 멕시코 작가 사비나 베르만이 쓴 <참치 여자>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레인 맨'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한 분야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고기능성 자폐증, 일명 백치천재라 불리는 카렌의 인생을 다룬 소설이었는데요. 어린 시절 마치 원시림에서 살아온 모글리처럼 엄마에게 학대를 받으며 짐승과 다름없이 자라난 카렌이 그녀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스탠더드한 사람들” 틈 속에서 어떻게 스탠더드한 전형적인 인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지를 보여주는데요. 어쩌면 우린 스탠더드함이 결코 스탠더드함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독특함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 역시 청각장애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수화’의 표현력과 아름다움, 새로운 시각을 선사함으로써 우리에게 낯설지만 <아름다운 언어 수화> 안의 완전함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될 수 있음을, 함께 걷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