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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타임지 선정, 20세기 세계를 놀라게 한 끔찍한 미해결 사건'인 '블랙달리아' 사건, 기억하세요? 1947년 미국 LA의 한 풀숲 근처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가 끔찍하게 살해돼 발견됐던 사건이죠. 이후 경찰조사를 통해 이 살해된 여성이 엘리자베스 쇼트라는 22살의 배우 지망생인 것으로 드러났는데,, 그녀는 1924년 메사추세츠에서 태어나 경제공황 후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면서도 할리우드 여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그녀의 꿈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실현됐는데,,, 경찰은 진범을 찾기 위한 조사를 착수했지만 죽기 전의 일주일간 행적을 전혀 알 수 없어 난항에 부딪히고 말았고, 평소 쇼트가 검은 옷을 즐겨 입어 '블랙 달리아 사건'이라 불렸던 이 살인사건은 당시 개봉했던 '블루 달리아'라는 영화와 맞물리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받게 된다.경찰은 쇼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 체포된 용의자만 해도 3천 여명, 사건의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무려 60여명에 달했지만 모두 허위자백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고, 여전히 쇼트의 사건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수많은 소설과 영화로 재탄생됐으며 100여건의 모방 유사 범죄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여전히 죽인 진범은 잡히지 않은 채 말이다.
<토로스&토르소> 역시 크레이그 맥도널드 소설로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사건 즉 ‘블랙 달리아’에서 출발한다. 초현실적인 예술과 살인을 오묘하게 섞어 놓은 스릴러 소설로, 추리소설을 쓰는 헥터 라시터가 자신의 소설 속 사건과 유사한 연쇄살인의 비밀을 30여년에 걸쳐 쫓는 스릴러 소설이다. 1935년, 폭풍이 밀어닥치는 키웨스트에서 헥터는 아름다운 여인 레이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날 저녁, 내장이 모두 제거되고 기계 부품들을 가득 채운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폭풍으로 엉망진창이 된 폐허에서 헥터는 친구인 헤밍웨이와 함께 구호작업을 벌이던 중 살해된 또 다른 시체들을 발견한다. 역시 초현실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듯 기괴하게 변형된 시체들을 말이다. 구호작업 후 헥터는 레이첼이 사라졌고, 그녀 역시 살인마의 제물이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2년 후, 헤밍웨이를 찾아 내전 중인 스페인을 찾은 헥터는 레이첼과 꼭 닮은 동생 알바를 만나게 되고 또 다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1947년 헥터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벌이는 기괴한 파티에 대해 알게 된다. 이렇게 <토로스&토르소>는 193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키웨스트섬,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화약고 스페인,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닥친 할리우드, 말년의 헤밍웨이가 살았던 쿠바까지,,, 실제 인간을 토르소(torso, 목과 팔이 없는 조각 작품)처럼 다루는 이 엽기적인 살인극은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사진작가 만 레이의 작품들이 살해된 여성의 몸을 변형시키는 원본이 됩니다. 3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무대를 옮겨가며 펼쳐집니다.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살인사건에 재현 시켜놓은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쫓는 추리소설가와 그의 사랑도 매력적이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실제 인물과 사건들을 절묘하게 픽션과 뒤섞어버린 것이었다. 헥터의 절친인 헤밍웨이는 물론이고, 오손 웰즈, 히치콕, 존 휴스턴 등,,, 그 시대 예술가들을 절묘하게 등장시키면서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그려간다.
“살인을 미학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면, 살인자는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하는 대신 파괴를 반복하는 반 예술가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 말이다.”
- 조엘 블랙
살인을 미학과 예술로 연결시킴은 이해할 수 없지만,,, 20세기 중반 등장한 초현실주의 미학 이론은 예술만이 아니라 범죄에도 꽤나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스릴러 소설에선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다. 픽션에서만 존재한다면 말이다. 소재 자체도 흥미롭지만, 고전틱하면서도(고전적인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기에 더 없이), 다수의 매력적인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카메오처럼 등장해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어 꽤나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