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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반짝거리는 입술 끝을 내 오른손 검지로 닦아서 혀에 대보니 달콤한 맛이 났다.
빙수 시럽의 달콤함이 아니었다. 뭐랄까, 더 복잡한 맛이었다.
역시 할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콤하게 발효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오가와 이토 [따뜻함을 드세요.] 할머니의 빙수 중에서 26쪽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끔 해 본다. 이 모든 과정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먹는다”일 것이다. 분명 사람에게 먹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 하나의 풍경일 테지만 지나고 보면 먹는다는 것만큼 우리에게 많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우리에겐 인생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오가와 이토의 전작 [달팽이 식당]에서도 그녀는 맛난 이야기는 주인공 링고를 통해 따뜻함과 행복, 그리고 인생을 풀어냈었다. 동화 같은 이야기는 그녀만의 독특한 식감과 색감으로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 역시 주인공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뜻함을 드세요.> 역시 마찬가지였음이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본 아뻬떼”를 외칠 수 있을 만큼 맛있는 요리와 함께 사연을 전하고 있다. 전작 달팽이 식당처럼 긴 호흡의 중단편이 아닌지라 짤막한(우동 한 그릇 같은 느낌이랄까? ^^;;;), 다소 급 마무리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녀만의 온화한 문체로 맛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간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위해 다소 시니컬한 손녀가 음식을 거부한 채 “후, 후”만을 외치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아채고, 가족과 함께 먹으러 갔던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할머니를 위해 공수해 오는, 그리고 할머니는 지금 달콤하게 발효되고 있다는 손녀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에 대한 애정 어림은 코 끝을 찡~~~하게 만들고, 다소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아내를 선택할 땐 이 가게의 맛을 아는 사람을 선택하라는 식도락가인 아버지의 유언대로 슈마이, 상어지느러미 스프, 삼겹살 덮밥까지 남김없이 먹고 난 뒤 수줍게 고백한 프로포즈, 30대의 마지막 날 10년을 함께 한 하지만 이미 이별을 고한 애인과 함께한 마지막 여행과 송이버섯 코스요리, 유치원 들어갈 무렵 죽음을 앞둔 엄마가 특훈을 하며 가르쳐준 된장국을 시집가기 전 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함께 하며 엄마를 추억하는 코짱의 된장국, 치매에 걸려 13년 전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생전에 함께 한 추억의 장소를 찾아 남편과 먹었던 하트콜로릿을 주문하는 쇼조 할머니,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던 돼지와 동성애에 빠진 폴크의 만찬,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며 아버지가 좋아했던 기리단포를 만들어 먹는 모녀의 이야기까지... 음식을 통해 인생을 추억한다. 어쩌면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단 얘긴, 오래 기억하고 싶은 추억과 사람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 그래서 그녀, 오가와 이토의 이야기가 은근하고, 뭉근하게,,, 우리의 인생과 접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