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시체의 밤
사쿠라바 카즈키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젊은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노력만 하면 꿈은 이루어질 거라고 들썩들썩, 들떠 있었다.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성실함이라고. 그러나 실제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불가능한 것들이 넘쳐나는 곳이 세상의 현실이다. 그 무렵의 꿈의 대부분은 마흔을 넘긴 지금, 되돌아보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기랄, 하고 생각한다. 꿈만 꾸면서 나이 먹게 하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놈의 방식인가. 더럽지 않아? 하고.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의뢰받은 일을 매일같이 해내고 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고, 실은 나는 아직 어딘가 낙관적인 데가 있다. 그런 식의 슬픔과 기묘한 충실감. 일하지 않는 자는 이 비참함과, 상반되는 황홀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 123

 

 

우릉우릉,,, 우레 소리가 하늘을 가르고 있다.

기묘한 마리오네뜨 인형은 표정을 감춘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토막 난 시체의 밤],,, ,,,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펼쳐든 소설이라 시작이 좀 하드코어적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닮아 있음을 감지할 것이다. 물론 미미여사의 화차는 좀 서늘한, 사쿠라바 가즈키 여사의 소설은 좀 기묘한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마흔 넘은 번역가 요시노 사토루, 고학생 시절에 하숙했던 고서점 나미다테이의 이층에서 묘령의 여인 시로이 사바쿠를 만난다. 빼어난 미모와 어딘가 현실감 없어 보이는 묘한 분위기의 사바쿠는 이름부터 기묘하다. 시로이 사바쿠, 흰 사막이라니. 너무 드라이하고 외로운 이름 아닌가? 그녀는 부모를 잃고 대출 광고에 넘어가 다중 채무자로 전락한 파산자로 쫓기는 신세다. 사토루는 아름다운 부인과 자녀를 둔 대학 강사와 번역가지만 이름만 그럴싸할 뿐 실상은 빚에 허덕이는 채무자일 뿐이다. 요시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바쿠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런 요시노가 번역한 책의 인세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바쿠는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정사 장면이 찍힌 비디오 테잎을 보여주고,,, 두 사람의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토막 난 시체]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이어진 일본 버블 경제의 파탄 속 소비자금융 전성시대를 살아간 등장인물을 통해 그들의 욕망과 현대 사회의 외롭고도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눈처럼 불어난 빚의 위력에 눌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저 돈에 이끌려 허우적대는 사바쿠, 자신과 같은 수렁에 빠져있는 여자의 욕망이란 뗄 수 없는 거머리를 짓이겨버리려는 듯 한꺼번에 묻어버리려는 요시노의 악마성을 드러나게 만든다. 그리고 한 번 빠져들면 다신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락과도 같은 지옥의 문을 열어 제친다. 그리고 우린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불안, 절망, 공포를 통해 우리 사회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이다. 아마 이 소설에서의 가장 극한의 공포는 우리 사회와 닮아있는 그래서 발을 빼려 해도 한 없이 수렁으로만 빠져드는 현실에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