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극복되지 못한 실연으로 낮과 밤이 뒤바뀌고, 오전과 오후가 뒤섞이고, 폭식과 절식 사이를 헤매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달력의 한 계절이 통째로 찢어져 사라진 후의 일임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봄인 줄 알았는데 가을이라는 걸 알아챘을 때, 이제 막 개나리가 진 줄 알았는데 물에 젖은 낙엽이 신발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걸 목격했을 때, 그때의 마음을, 머리와 빗장뼈가 동시에 울릴 때 나는 그 진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진동으로, 무음으로, 다시 벨 소리의 볼륨을 끝까지 올리던 반복의 반복들. 불현듯 잘못 누른 버튼 때문에 신호음이 울릴 때, 복음 같은 그 소리에 주저앉아 전화기 버튼을 누르며 독백하던 날들. 사강은 그런 아침을 자신이 어떻게 견뎠는지 어렵지 않게 기억했다.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조찬모임 52

 

맥주 한 캔 따고, 매미 소리 들리는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본다. 10년 전쯤인가? ,,, 이 모양 이 꼴로 계절이 몇 번 바뀌었던 것 같다. 백영옥의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모임> 나오는 이 상태로 말이다. 나도 그 땐 실연이란 상처를 극복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듯 싶다. 직장 다니랴, 대학원 수업 준비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은 술에 찌들어, 몇 달은 잠 못 들어, 몇 달은 멍 때리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했던 시간이 문득 떠오른다. 그 때만큼 가슴 아팠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물론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사랑도 아니었건만,,, 그 땐 그리도 서글펐던 시간이었는데,,, 뭘 먹어도 받아들이질 못하고, 자다가도 불현 듯 벌떡 일어나길 수 천 번, 내 생애 가장 살이 내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 유지했었어야했는데,, 깔깔깔,,,

 

백영옥,,, 그녀스러움이 넘쳐나는 매력적인 컨셉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 모임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진행되는 동명의 모임 진행으로 시작된다. 트위터를 통해 공지가 확산되었고, 21명의 사람들이 모임 당일 오전 일곱 시에 레스토랑으로 모인다. 오전 일곱 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레시피 메뉴판에 적힌 메뉴는 따뜻한 식전주, 햇볕에 말린 홍합과 신선한 들기름에 볶은 한우를 넣어 끓인 미역국, 내일의 달걀찜, 아침 허브와 레몬을 곁들인 연어구이, 봄날의 더덕구이, 미니 꽃밥, 완두콩과 밤을 넣은 돌솥밥,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영화제에서 “500일의 섬머, 러브레터, 화양연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실연의 기념품인 차마 버리지 못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랑의 상흔들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 남녀의 인연이 얽히기 시작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그녀를 유부남 조종사와의 사랑으로 이끌었을까? 조종사 정수와 사랑에 빠진 사강, 하지만 그가 아내를 버리고자 했을 때 사강은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이별을 고한 그녀가 실연의 늪에 빠져버린다. 십 년 된 여자 친구 현정의 이별 통보에 방황하는 컨설턴트 강사 지훈,, 그 역시 실연이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 사강은 지훈이 내놓은 오래된 로모 카메라를 집어 들었고, 지훈은 사강의 실연기념품인 <슬픔이여 안녕>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과 엉킨 인연의 실타래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또 치유해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존재할 것 같지 않던 '다시'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자라나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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