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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긴 호흡의 대작이 아닌 단편소설로의 조정래 선생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징하다. 우째 그리도 서글프디 서글픈 우리네 힘든 시간들을 그리도 잘박잘박 징하게도 씹어주셨는지, 물 밀 듯 밀려오는 아픔에 저리저리한 가슴을 다독이기도 힘들 지경이다.
<황토>, <비탈진 음지>에 이어 만나게 된 <외면하는 벽>
1977에서 1978년 사이의 작품들 가운데 8작품을 선별해 재출간 한 작품집이다.
비둘기, 우리들의 흔적, 진화론, 한-그 그늘의 자리, 마술의 손, 외면하는 벽, 미운 오리 새끼, 두 개의 얼굴,,, 하나 같이 지나가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되새기며,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가슴을 ‘아픔’이란 단어로 다 표현될 수 있을까?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 그 시절에 대해 타인의 시선으로 대체 경험했던 이들, 그 시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조차,,, 그 시절을 접하고 나면, 먹먹할 것이다. ‘아픔’이란 단어로는 그리 다독여지기 힘듦을 이해할 것이다.
사상범으로 붙들려 백골섬이란 곳에 갇혔지만 끝까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죄수 1004호의 절망을 다룬 <비둘기>, 직장동료 미스 김의 자살을 통해 들여다본 소통 단절 <우리들의 흔적>, 소매치기 생활과 소년원 체험으로 불우하게 자란 동호의 고통스런 이야기 <진화론>,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의사가 된 태섭과는 달리 유부남의 아이를 밴 채 희망 없이 살아가는 경희의 이야기인 <한, 그 그늘의 자리>, 70년대 TV가 들어오면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을 통해 그 속에서 생성되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그려가고 있는 <마술의 손>, 아파트 주민들의 이기심을 통해 근대화가 가져온 소통의 단절과 전통의 몰락을 보여준 <외면하는 벽>, 혼혈아들이 겪는 인종차별로 인한 고민과 갈등 <미운오리새끼>,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유착 관계를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귀신 소동에 빗대 비꼬고 있는 감칠맛 나는 <두 개의 얼굴>,,,
8편의 단편을 통해 인간성의 소멸과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다. 마치 그 시절의 갈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돼 오고 있음이 당연하다는 듯, 아니,,, 우린 더 서로에 대해 분노하고, 더 갈등하고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외치고 있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