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에쿠니 가오리.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 지음, 임희선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어제 저녁 한 시트콤 속 주인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부음 전화를 받는다. 누군지 알 순 없지만 문상을 가 아버지를 잃고 홀로 상을 치르는 아이가 안타까워 하룻밤 함께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 가려는데 발인 때 관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소리에 또 발걸음을 멈추고 장지까지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고인이 된 이가 누군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였을까? 그리고 이어진 회상 속에 등장한 그 고인은 주인공이 버스를 탔을 때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아 버스비를 대신 내 준 아저씨였던 것이다. 나중에 버스비를 부치겠다며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드린 그 번호로 온 연락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아저씨에 번호를 입력해 드리며 "나중에 이 고마움은 꼭 갚을게요."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클로즈업 된 그 순간,,, 난 그 한 마디에 왜 그리 눈물이 핑그르르르 돌던지 말이다. 그래,, 우리 사는 세상, 이런 고마움들을 갚아가며, 전해주며 살아야하는데,,,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우리 모두에겐 이런 마음이 숨 쉬고 있는데 말이지,,, 싶고 말이다. 한참 웃는 가운데 도르르 떨어진 눈물 한 방울에 왠지 내 마음이 치유되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런 치유의 느낌은 어젯밤 읽은 4편의 단편소설로 이어진다.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가쿠타 미츠요, 이노우에 아레노, 모리 에토, 에쿠니 가오리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유럽의 슬로푸드, 소울푸드를 찾아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그곳을 배경으로 쓴 치유의 이야기, 단편소설집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사실,,,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음식의 치유 효과는 누구든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4편의 단편소설 속엔 갈등과 분노, 슬픔과 혼란, 오해와 진실, 집착과 용서,,라는 감정들이 따뜻한 요리 속에 녹아들어 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가업을 잇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위암 선고 역시 집안의 가풍대로 친지들과 식사모임 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소식을 전하는 모습에 형태모를 분노를 느끼고 고향을 떠나 난민 캠프에서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만들며 돌고돌아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안도도,,,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가 함께 나눠왔음을 깨닫게 되는 아이노아, 고등학교 3학년 때 30살 연상의 선생님과 결혼하지만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살고 있는 알리다, 문명보다 인습을 소중히 여기는 어머니와 집안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어머니와 관계가 틀어져 집을 떠나지만 브르타뉴의 매력 메밀(블레누아)에 새겨진 맛을 알게 되고,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게 되는 브르타뉴 남자 요리사 장, 게이 애인의 바람기에 상처받고 질투하며 고민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짧은 단편 소설 4편은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 뭔가 뭉쳐있는 감정의 흔적들을 풀어나간다.

 

p19 "초리소가 든 콩 수프, 생햄이 든 크로켓, 하얀 수프에 떠 있는 붉은 새우, 초록색 소스에 덮여 있는 절인 대구, 빵 부스러기, 햇빛을 반사해서 반짝이는 많은 유리잔. 계속해서 비어가는 차콜리 술병들. 나는 눈앞에 있는 그 광경이 처음으로 섬뜩하게 느껴졌다."

- 가쿠타 미츠요 <신의 정원> 중에서

 

p66 "냄비 안에 있는 채소는 이제 완전히 부드럽게 삶아졌다. 양파, 샐러리, 토마토, 주키니 두 종류, 파프리카에 강낭콩. 모두 우리 밭에서 거둔 채소들이다. 아주 약간의 소금만으로 간을 한다. 큰 냄비에 한가득 담긴 미네스트로네(이탈리아식 채소수프). 채소를 핸드믹서로 가는 것은 카를로가 자라난 몽펠라트 집안의 방식이다."

- 이노우에 아레노 <이유> 중에서

 

p149 "짭짤한 크레이프, 어머니께서 끝까지 집착하셨던 갈레트. 맞아. 하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만 가지고 만들면 안 되지. 갈레트가 가진 독특한 짠맛, 그걸 이용해서 뭔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낼 수 없을까? 이 고장의 비트나 아트초크랑 같이 섞어서 샐러드 같은 전채요리를 만드는 거야."

- 모리 에토 <블레누아> 중에서

 

p207 "식후에 나온 노란색 과자를 한입 먹은 우리는 헉 하고 질려버렸다. 당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달았다. 더구나 거대했다.,,,, 철저하게 건강한 음식이네. 대지의 맛이지.... 다 먹고 나자 뼛속까지 설탕조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온몸이 튼튼해진 느낌도 들었다."

- 에쿠니 가오리 <알렌테주> 중에서

 

아침을 깨우는 소리 "밥 먹어라~", 점심 회사 칼밥 먹으러 올라가며 "줄 많이 서 있기 전에 빨리 올라가서 밥 먹자.", 꼬르륵 대는 배를 달래며 "저녁은 뭘 먹을까?" 우리에게 "식"의 의미는 인생 그 자체 아닐까? 고로 삼시세끼 모두 소울푸드? ^^ 식탁이란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지만, 어쩌면 밥 한 공기에 담겨있는 따뜻함이 주는 치유는 가장 소중한 순일 테니까 말이다. 그 매 순간순간의 치유가 없다면 우리가 버틸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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