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이었을까? 책장에 꽂혀 있는 조선왕조와 관련된 역사책 한 질을 쉬엄쉬엄 읽어나가는데,,, 음,,, 이 내용이,, 대부분 야사? 때문에 실록보다 쉽고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왕비의 동성애 논란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음,,, 김별아 작가의 신작 <채홍>이 바로 세종의 며느리이자 문종의 두 번째 빈이었던 순빈 봉씨의 이야기다.

 

동성애 스캔들을 정면으로 다룬 역사 소설 <채홍>

채홍은 무지개를 뜻하는 말로 동성애의 상징이 무지개라 아마도 제목을 이리 정했을 듯 싶다. 저자에 의하면 태양의 반대편에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 ‘채홍’이란 의미를 통해 왕이라는 빛나는 태양의 반대편에 가려진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 갈등, 질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근엄한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남성 중심의 나라 조선에 태어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어린 소녀 ‘난((暖 순빈 봉씨)’,,, 하지만,,, 지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살다가 거짓 임신으로 소동을 일으키며, 지아비로부터, 궁중으로부터 소외돼 급기야 나인(소쌍)과의 잘못된 사랑을 선택하게 된,,, 비운의 왕비 순빈 봉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p73 사헌부 감찰을 거쳐 창녕 현감으로 재직한 봉여의 고명딸 난은 어여쁜 소녀였다. 가량가량한 얼굴과 몸이 야윈 듯하면서도 탄력성 있고 부드러웠으며, 눈초리를 한껏 떠들치며 씽글거리는 웃음이 고혹적이었다. 이팔의 나이에 이르매 풍만한 자태는 절정에 이르러, 화려하고 풍염하면서 위엄을 갖춘 모습이 활짝 피어난 한 떨기 모란을 연상시켰다.

 

이러한 미모를 갖춘 난이었지만, 효심 가득하고 인품이나 성품, 덕에 있어서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세자,, 하지만 단 하나 여자에 대한 관심이 미비했던 터라,, 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낯부끄러운 비방을 썼던 세자의 첫 번째 부인 휘빈 김씨가 폐서인 되고, 3개월 만에 세자빈으로 책봉된 난(순빈 봉씨),,의 시련은 궁궐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어머니 없이 아비와 두 오라비 손에 자란지라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난은 타고난 아름다움은 물론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당당한 소녀였다. 하지만 세자 향(珦, 문종)은 아름다운 난을 봐도 시큰둥,,, 세자빈 난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득하지만, 사랑을 구걸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의무를 이행하듯 빈궁에 드나드는 세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이 커져간다. 세자와의 소원한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3명의 후궁이 들어오게 되고, 그 중 한 후궁이 태기를 보이면서 봉빈의 불안은 점점 커져 간다. 급기야 상상임신을 하게 되지만 사람들은 거짓임신이라 봉빈을 의심하고 세자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만 갈 뿐,,, 봉빈은 술에 자신을 의지하고, 동궁나인인 소쌍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며 그녀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성질이 투기가 많고 대를 이을 자식이 없으며, 또 궁궐 여종들에게 항상 남자를 사모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또 세자가 종학으로 옮겨 가 거처할 때에 몰래 시녀의 변소에 가서 벽 틈으로 엿보아 외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요사이 듣건대,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였다.” (『세종실록』 1436년 10월 26일자)

 

세자빈 순빈 봉씨를 폐서인시키며 내린 기록이다.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킨 세자빈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키 위해 금기를 범한 방탕한 인물로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채홍, 봉빈은 육욕적인 사랑이 아닌, 그저 지아비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네였을 뿐이었다. 사랑 받고자 하는 여인의 욕구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동성애에 빠진 음험한 왕비라는 시각에 그저 수치스런 역사라고도 불릴 수도 없는 단편적인 사건으로 치부해 버린 묻혀 있는 그녀의 이야기,,, 하지만 어쩌면 조선의 역사 자체가 남성 중심이자 승자의 기록이기에 그저 묻어버린 이야기들에 대한 분명 다른 시각의 조명도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p 199 마음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비참했다. 그곳에는 희망과 기대에 부푼 생기발랄한 소녀 대신 절망과 깊은 시름에 잠긴 후줄근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다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징그럽고 구차하게라도 살려고 했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었다. 억지 시늉을 해서라도 사랑하려 했다. 하지만 사랑은 애초부터 구걸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비굴하고 좀스런 비럭질로는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욕망마저 수치라 여기며 살아온 여인 순빈 봉씨의 기록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채홍>은 하늘과 땅이, 땅과 하늘이 지평선에서 만날 때 서로의 높낮이를 겨루지 않듯이, 경계 없이 평등하고 무애하기에 햇살과 노을과 아지랑이 같이 드리울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 꿈꾼,,, 여인네의 사랑하고, 사랑받고픈 슬프고도 미약한 저항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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