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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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어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윤동주님의 <쉽게 쓰여진 시>를 찾아 읊조려본다.
절망적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능동적인 저항치 못한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싯구에서 느껴지는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 아침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희망을 바라는 그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저항시인이 된 윤동주의 유고 미스터리,,  구효서 작가의 <동주>

일제 생체 실험 결과 옥사한 것으로 알려진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소설 속에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교토의 15살 소녀 요코이자 이타츠 푸리 카인 그녀의 기록 속 윤동주와 그녀의 기록 속에 존재하는 윤동주의 글을 쫓는 재일 한국인 3세 야마가와 겐타로(=김경식)의 시선으로 두 갈래의 이야기로 갈라진다. 하지만,, 분명,, 이 두 시선의 끝은 동주에게로,,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요코와 김경식)이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이유로 윤동주의 유고 시와 산문을 추적한다. 윤동주와 교토의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요코, 나가사키에서 의붓아비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며 살다 교토로 도망 와 동주를 알게 됐고, 그가 시를 쓰는 한국인이며,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지만 어렴풋하게 그가 남들과는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요코는 자신도 모르게 일본경찰에게 동주의 일상을 낱낱이 제공하는 일을 하게 됐고, 경찰에 연행된 동주가 자신이 사랑하는 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단 사실을 알고, 그의 유고 시 원본을 찾게 된다. 그리고 동주 때문에 글을 익히고, 자신이 일본 내 소수민족인 아이누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시를 강제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한 시인의 죽음에 아파한다. 말과 말의 영토를 앗긴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아픔을,,,그리고 자신이 한국인임을 뒤늦게 알게 된 김경식(야마가와 겐타로), 친구와 함께 수상쩍은 도서검색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친구가 행방불명되고, 그의 행방을 찾다 윤동주 유고집과 관련됨을 알고 그의 유고집을 찾던 중 요코이자 이타츠 푸리 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의 동주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친구를 찾아 나선다. 윤동주의 유고집을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륙낭인이라는 일본 세력의 존재를 알게 되고, 행방불명됐던 친구의 사연 역시 드러난다. 그리고,,, 김경식은 자신의 기록을 일본어가 한국어로 집필하겠단 마음을 먹게 된다.

두 사람에 의한 추적 과정,,,
소설 속 윤동주는 민족저항시인일 정도의 거창한 나라사랑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저 조선어로 된 시를 쓰고, 그 아름다움을 지킴으로서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여실히 드러낸다. 늘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섬 같은 그 곳,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의 저항은 늘 외로워하고 망설이고, 부끄러워하고 그리워하며,,, 그저 아름다운 조선어로 그의 시로 저항하였다. 그러하였기에 동주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 후쿠오카 형무소가 아닌 그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했던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시인의 마음을 빼앗긴 그곳에서 말이다.

"동주가 조선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더 좋고 더 나아서가 아니라 고유성을 지키려 했던 거고, 그것을 잃으면 실상 모든 것을 잃는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게야. 들판의 모든 꽃이 사쿠라가 돼버리면 세상에는 꽃이란 것 자체가 없어지는 거란다. 사쿠라는 다른 꽃이 있어야 사쿠라인 게지. 일본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문명을 사칭하여 남의 나라를 강압적으로 침략하고 지배하고 있어. 망하는 길이지. 동주는 동주의 꽃을 피우려 했을 뿐이야. 시인이라면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니까. 꽃은 서로 다르되 향기의 숨결로 생명을 나누며 함께 숲을 이루지. 다르면서 서로 의지하고 교통하는 생존의 이치를 아는 시인이라면 남을 치거나 미워하지 않는단다. 다만 자기를 지키다 꽃처럼 고요히 죽어갈 뿐이지."

조금 복잡한 구성이라,,, 초반부엔 난해하다 생각수도 있겠지만,,, 복잡한 인물 구성과 사건들을 지나면 보이는 윤동주의 조선어에 대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전율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질지도 모르겠다.

"저에게는 흔들림 없이 문학에 매진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부디 제 앞길을 열어주세요. 가족과 교회와 간도와 조국을 결코 한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조선이 없으면 조선의 시인도 없습니다. 저는 조선의 시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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