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편지, 언제 써 보셨어요?

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니,,, 마음 담긴 편지를 썼던 것이 꽤 오래 전 일이 돼 버렸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편지쓰기를 즐겨하고, 친구들로부터 도착한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펼쳐보며, 빙긋 웃음 짓던 날들이 참 많았음이다.
누군가에게 글로 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참 기뻤던 듯싶다.
계절을 묘사하며 안부 인사를 묻고, 이 얘기 저 얘기,, 두서없는 얘기들을 글로 적다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들이 밀려왔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많이도 빼앗아간 것이 틀림없다.

<더 레터>는 나희덕 시인과 장석남 시인이
서로 주고받은 서른 통의 편지 엮어 만든 에세이다.
막역한 두 시인의 정성 깃든 편지들을 한 편 한 편 읽고 있노라면,,,
내가 강원도에 있는 듯, 혹은 전라도에 있는 듯,,,
하루하루 시인의 일상을 함께 거닐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겨울의 지극한 지점 동지에 삶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봄을 예감하며 슬픔 뿐 아닌 웃음이 지닌 힘으로 화답하는가 하면,
갑작스레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고 문득문득 아늑한 일상의 낯설음과 함께 서늘함을 건네면,
이별의 아픔을 지혜롭게 넘기는 친구의 모습을 다독이며 마음을 전한다.
정성이 깃든 편지 속엔 설레는 마음이 담겨있고,
두 시인의 일상 속 진솔함들이 동봉돼 있다.

p10 "삶이 외롭다는 것을 짐작한 지 꽤 여러 해 되었습니다만, 그 외로움을 이겨 나가는 한 요령에는 자기 마음을 무턱대고 보여주는 것도 가끔 크게 우는 것만큼이나 효력이 있는 줄 압니다. 문득 연암 선생의 ‘호곡장’ 생각이 나네요. 울기 좋은 데를 알아차리다니! 짐작만으로도 마음이 젖습니다. 이 편지가 제 허름한 마음의 노출일 것이 문득 부끄럽습니다.”

p36 "이 소음과 먼지 속에 살아있다는 것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문득 문득 낯설고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가 죽음으로 기우는 마음을 삶으로 끌어당겨 주름을 조금씩 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p40 "매화꽃을 보러 당신의 옛 암자인 불일암을 찾아가는 생전의 법정 스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닌 꽃의 언어로, 식물의 언어로 안부를 묻는 스님의 표정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무소유의 수행승이었지만 그 향기는 몇 마지기나 되는 듯 부자였습니다. 또 한 분의 어른을 잃은 마음이 허전합니다."

p114 "전망이 좋은 창은 집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아름다운 빛 한 자락을 들여주고, 창으로 드나드는 바람은 오래된 마음의 습기를 말려 주지요. 그러고 보니 ‘창’이라는 말에 마음 ‘심’자가 들어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해요. 눈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있어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며,
고전의 한 구절이나 시 한 수, 인문학적 지식들을 나누는 글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엔,,,
나도 모르게 편지지 위 누군가에게 건넬
온기 가득한 편지 한 통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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