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하는 날
최인석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냥 ‘연애’라고 할까 하다가 그건 성에 안 차고 뭔가 부족한 거 같고, 그래서 앞에 ‘연애’를 놓고 뒤에는 앞의 ‘연애’를 야유하는 기분으로 ‘하는 날’이라고 붙였지요. 이 정도로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 최인석 작가


비릿하다. 책장을 덮고 난 뒤 코끝에서 비릿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느새 자신의 동네가 낯설어진 수진,, 왜? 무엇이 바뀌었을까? 아이의 땀이 자신의 원피스에 묻는 것도 싫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편에게도 저항하고, 이월의 방에서 그녀의 새로운 사랑 장우를 기다린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저 그가 오기만을 기다려야하는 이월의 방에서 그녀가 사랑이라 생각하는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랑에 그녀의 슬픔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연이어 떨어질 뿐이다.

"지금 그녀에게 이 사랑보다 명백한 것은 없었다. 
 길지 않은 그녀의 생애 최초로 그녀는 삶을, 현실을, 그녀 자신을, 
 그리고 사랑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어쩌면 평생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동산으로 부를 일군 장우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10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실 기억에도 없던 시장통 기름집 딸내미 수진에게 축의금을 전달하러 동사무소 강당에서 열리는 상곤과 수진의 결혼식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발견한 울보 수진이의 환한 웃음,,, 어찌 이리도 누추한 장소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싸움질 벌이는 잔치 마당에서, 그리도 환히 웃을 수 있는지,,, 그 눈부신 웃음에 분하고 억울하고 알 수 없는 화가 치민다. 그리고,, 수진을 앗아간다. 그들에게게서,,,

“장우는 깨달았다. 
 그가 수진에게 아파트를 사준 순간 매뉴얼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갔다는 것을.
 더 이상 매뉴얼은 없었다. 그가 당황한 것은 바로 매뉴얼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는다. 왜? 철옹성 같던 그의 가정이 산산조각 부서질까 두려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아내의 봉급이 자신보다 높고, 아내의 잦은 출장에 늦은 귀가시간,,,, 돈 잘 버는 아내가 불편하다.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꿈꿀 수도 없던 일들이,,, 악취처럼 풍겨온다. 그가 원하는 것은 착하고 따스한 예쁜 아내다. 지금의 수진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예쁘지만 차가워졌다. 그는 아내의 환한 얼굴이 그립다.

"그는 아내에게 화가 났고 또한 아내가 그리웠고 
 아내를 그리워하는 자신이 미웠고 억울했고,,,, 
 이 모든 것을 누더기 벗어던지듯 내던지고 달아나고 싶었다.
 어디로? 여기만 아니라면 상관없었다. 아아, 여기만 아니라면."

모든 것을 대차대조표의 한 항목으로 대치하는 장우,
소시민의 행복,, 그 자체인 상곤과 수진 부부,,,
이들을 축으로 <연애, 하는 날>은 4년 전 자살로 아들을 잃은 장우의 아내 서영과
매제의 바람기를 이용해 한 몫 잡아보려는 기생충 같은 인간 서영의 오빠 두영,
그리고 먹물 예술가 영화감독 지망생 대일과 백화점 화장품 판매직원 연숙의 사랑을 통해
사랑을 가장한 욕망들을 촘촘하게 그려간다.
언뜻 보면 뻔한 유부남과 유부녀의 통속적인 사랑이지만,,
소설은 물질문명에 노예가 돼 있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그대로 보여줌과 동시에
그 어둡고 비릿한 이면에 숨어있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의 비릿함을 더해주는 듯 싶기도 하다... 씁쓸하게도 말이다.


“두 사람은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골목길을 낡은 바퀴의자 바퀴가 덜컥거리며 삐꺽거리며 굴러갔다. 
 돌부리에 부딪치면 멈춰야 했고 우회해야 했다. 
 상곤의 이마가 통증으로 일그러지고 수진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라도 그렇게 가고 싶었다. 
 어쩌면 이대로 바퀴의자를 밀고 그들끼리 어디론가 사라져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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