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
정혜윤 지음 / 난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교묘하게 감춰져 있어서 이런 장면에서는 감동을 느낄 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럴 경우, 감동은 두 배로 증가한다. 또 그 감동이 '자신'의 '평소'의 모습과 겹치면서 분명희 '특별한 장면'은 아닌데 왜 눈물이 흘렀을까 하는 의문도 느낀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중에서


며칠 전 이웃 블로그에서 읽은 좋은 글귀다.
왠지 공감 가는 내용이라 몰스킨 노트에 적어뒀었는데,,,
정혜윤 PD의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바로 이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미소 짓고 있던 내가, 갑자기 빵! 하고 웃음 터트리던 내가,
갑자기,,, 교묘하게 감춰져 있는 장면에서
가슴 팍 한 구석 사이다 기포처럼 알싸함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코끝이 찡해지며 동시에 심하게 깜박이는 눈꺼풀,,,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고여 있던 눈물은 내 빰을 타고 도르륵,,, 흘러내리며
손등으로 쓱,,, 훔쳐지는 것이 아닌가?
특별한 장면은 아닌데,,, 특별한 여행은 아닌데,,, 특별한 사람은 아닌데,,,
그저,,, 우리네 사는 얘기이고,,, 그저 보통 사람들 이야기일 뿐인데,,,
그녀와의 여행 동행은 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고 있습니까?

* 평생 문맹자로 살아가던 일흔 두 살의 한충자 할머님,,, 
  시집 와 군대 간 남편이 보낸 편지에 답장 한 번 못했던 할머님이 
  50년 만에 남편에게 쓴 답장

"............ 당신에게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써보지 못했고
이제야 당신께 사랑이란 말을 씁니다. 당신을 이 세상 끝까지 사랑할 겁니다.
여보, 고맙습니다. 2006년 4월 13일, 당신의 아내가"
 

  그리고 한글을 배워 시를 짓기 시작한 시갈골문학회에서의 어르신들의 시집 속 시들

"바가지에 씨앗을 담고 / 밭으로 가는 길 /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꽃이 만발하고 / 벌 나비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닌다.
 저 건너 산에는 아지랑이 아롱아롱 / 마음을 사로잡아 씨 뿌리기 힘들게 하고
 밭에는 이얏 쩌쩟 소 모는 구성진 소리 / 괭이질하다가 앉아 쉬는데 깜빡 오는 잠.
 종달새 지지배배 잠을 깨어 /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 한충자 <봄, 씨앗 뿌리기>"

  "주옥같은 글"이란 표현은 바로 어르신들의 시 한 편 한 편을 일컫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듯 싶다.

* 1995년 19살에 돈을 벌기 위해 미얀마를 떠나 한국으로 날아온 이주 노동자 소모뚜,
  오랜 방황 끝에 나이 마흔에 평생 바칠 일인 나무에 대한 연구에 빠져버린 강판권 교수,
  곤충분류학이란 소외된 분야에 접어들면서 든 생각이 
  '아,, 이것이 순교구나!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는 
  그리고 진딧물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있는 김효중 교수,
  손에 대한 시를 쓰면 손의 아름다움 보다는 내 손이 하나 필요한 곳이 없는가에 대해, 
  셔텨에 대한 시를 쓰면 물질적 차가움 대신 누군가에게 무겁게 닫힌 셔텨였던 적은 
  없었는지에 대한 시를 쓴 시인 송경동, 
  "나침반에 있어 정북향의 본질은 떨림이다. 결국 우리는 떨면서 가는 것이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발견해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지도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송규봉 GIS 분석가,,,
 

그녀의 여행은 인생이 여행으로부터 배워야할 것들에 대해 시작되지만,,,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인생,
자칫하면 낙오자로 오인 받을 수도 있는 그네들의 인생이란 여행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어떤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고, 어떤 인생이 실패한 인생일까?
인생엔 성공도 실패도 존재치 않는다.
다만 묵묵히 살아온 날에 살아갈 날을 덧붙이면서,
살아갈 날이 지나온 날의 의미를 끝없이 수정하면서 완성해 가는 것이다.
아직 우린 선의 끝부분에 닿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북향으로 향한 나침반의 떨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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