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느 새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진로에 대해 때론 진지하게 때론 농담반을 섞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계속 공부하다가 딱 나랑 눈마주치는 순간은 폰을 하고 있을 때라던가. 아니면 주말에 늘어지게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자고있다던가.. 게으름의 끝판왕을 보여줄 때마다 잔소리처럼 늘어놓는 소리가 있다.
" 그렇게 할거면, 다 고만두고 (때려치우고), 셋 중에 정해. 요양원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돌보거나, 미용실 가서 미용배우거나, 아 요샌 강아지 미용도 뜬다더라. "
"왜 맨날 나보고 요양원가래. 안갈거야. 하려면 엄마나 해."
서로 감정만 내세우며 날선 대화로 대화도 뭣도 아닌 것으로 끝맺을 때가 많다. 저것이 앞으로 이 험한 세상에 뭘 해먹고 살려고. 걱정이 사실은 더 많이 담긴 소리일텐데 고생하지 말고 쉽고 편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는 내 바람이 저런식으로 표현되곤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를 돌볼 수 있을까?>를 읽고 내가 얼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돌봄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단어도 낯선 "영케어러"들의 실제 경험담을 읽을 수 있다. 젊은 나이에 남들이 다 취업전선과 학업에 몰두하던 시기를 가족을 돌보며 보내야했던 작가님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몇 해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수술로 온 가족이 돌봄이 어떤 일인지를 체감하게 되었다. 올해는 또 시어머니가 뇌수술을 받으시면서 이제 돌봄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이 자녀에서 부모님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수순인건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첫번째 최유나 작가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돌봄을 주고받으며 사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