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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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란, 민트초코가 아니라 백성의 생명력을 풀에 비유한 표현이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란 작품을 아시는가. 바림이 불어도 비가 와도 풀은 누워서 그 모든 고난을 이겨낸다. 이처럼 민초들은 삶의 고난과 역경을 회피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어 존재해왔다.

감히 최애 작가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무척 존경하고 (우리집에 은근 작가님 책이 여러권 있으니 최애는 확실하다) 사랑하는 이금이 작가님의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 세 번째 이야기인 '슬픔의 틈새'는 역시 감탄을 불러오는 작품이었다. 비교를 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나 이민진 작가님의 '파친코'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비슷한 시기를 낯선 땅에서 타의에 의해 살아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 여실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작은 화태로 이동하는 덕춘의 가족이다. 덕춘은 생활력 강한 여성으로 광부로 일하는 만석의 아내이다. 남편을 찾아 멀고도 먼 일본과 소련의 접경지인 사할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덕춘은 고향 공주 다래울을 떠나 딸 단옥과 아들 성복, 영복이를 데리고 화태로 향했다. 성복은 화태로 오는 도중에 돈을 벌겠다고 가족과 떨어지게 되고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숙소에 도달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힘든 환경에 덕춘과 단옥은 실망하게 된다. 단옥은 단오에 태어나 기가 세다고 엄마에게 타박받는 딸이지만 누구보다 명랑하고 생명력이 강하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성장한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정만아저씨네 가족과 친분을 나누며 탄광촌의 힘겨운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며 단옥은 성장한다. 정만 아저씨는 고국에 가족이 있지만 탄광촌에서 남편을 여읜 치요라는 일본 여성과 재혼한다. 치요에게는 유키에라는 전남편 사이의 딸이 있었고 유키에는 단옥과 뗄 수없는 자매로 함께 성정하게 된다. 단옥은 똑똑하고 영리한 여성이었지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새로 이주한 곳에서 진수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노력으로 진수와의 혼사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덕춘은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고 징용당한 덕춘의 남편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 남은 가족은 덕춘과 단옥, 해옥, 영복, 광복이뿐이다.

긴 세월 동안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전쟁, 휴전에 이르기까지 조국의 역사는 복잡한 시간의 소용돌이에 접어든다. 고국에서 머나먼 사할린 땅까지 소식을 전달받기에는 너무 물리적 거리가 멀었나보다. 강제로 떠돌게된 이들은 조국에도, 일본에도, 소련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계속 불편함을 감수하며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런 순간에도 생명은 계속 태어나고 대를 이어가며 우리 말과 문화 역시 잊지 않고 지켜내며 이들은 삶을 살아 낸다.

기억을 금고처럼 보관하고 있던 엄마가 사라지자 고향도 함께 사라진 느낌이었다.

단옥은 나날이 더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아예 사라질까봐 겁내며 틈날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틈새, 313쪽

덕춘이 환갑도 되기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단옥은 남은 가족들과 생을 이어간다. 단옥은 주단옥, 다마코, 올가라는 세 나라의 언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생을 마감한다. 일본을 떠나지 못한 채 차별과 맞서 살아낸 우리민족의 이야기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 알려져있지만 사할린에도 우리의 동포가 남아있을 거라는 것은 잘 몰랐다. 열 두 살에 고국을 떠난 단옥이 77년의 세월을 낯선 땅에서 살아내며 그곳을 새로운 고향으로 여기고 삶을 마무리하는 결말을 통해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 두 작품 다 하루, 이틀 만에 빠져들어 읽었는데 '슬픔의 틈새' 역시 기대에 부흥하는 작품이었다. 오랜만에 OTT보다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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