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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다의 목격 ㅣ 사계절 1318 문고 131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평점 :
작가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요즘 젊은 작가들의 패기와 당돌함은 새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기에 늘 신간을 둘러보는 설렘은 백화점의 신상을 맞이할 때의 엔돌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닷다의 목격’ 역시 이러한 설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곳을 보는 닷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영화 ‘식스센스’가 떠오르면서 유령을 보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가? 익숙한 포맷인 것 같으면서도 궁금한 설정이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었다. 여고괴담 속에 사라지지 않고 등장하는 졸업생 마냥 학교를 전전하며 좋아하는 급식 반찬이 나오는 날 당당하게 급식을 쟁취하는 너구리라니. 제육볶음을 먹고 후식으로 바닐라아이스크림이 찰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너구리라니.
학교 안에 있다 보면 별의별 아이들을 다 만나게 된다. 바닐라빈이란 이름의 너구리마냥 산더미같은 급식을 다 먹고서 아무것도 안 먹은 것처럼 다음 학년 줄에 무심한 얼굴로 줄을 서서 두 번째 급식판을 담는 녀석도 있고 기껏 받은 급식을 깨작거리다가 그대로 퇴식구에 반납해버리는 녀석까지. 급식을 두 번씩 먹는 아이는 혹시 오늘의 영양섭취가 이것이 전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깨작거리는 친구는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어 밥맛이 떨어졌나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며 급식지도를 할 때가 많다.
닷다가 본 것은 너구리만이 아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성범죄의 목격자가 되었지만 늘 그렇듯 학교 안의 일은 본 것을 말해도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귀찮은 일의 추가가 되기 쉽상인지라 닷다 역시 입을 꾹 다물고 만다. 화장실 몰래카메라의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이유는 정말 학교 안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약자는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잘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들키고 싶지 않은 학교의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리지만 그래도 바닐라빈이 모른 척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닷다 역시 방관자로 남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의 안도를 하며 작품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단편 ‘제물’은 인당수에 빠져야했던 심청이가 떠오르는 상황 전개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다수의 평화로운 생활이 보장된다는 상황은 극단적으로 느껴지지만 현실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기에 외면으로 일관해 온 나의 삶을 돌아보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관습과 사회가 무너지는 것이, 그들은 두렵다.” p54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행해온 수많은 관습과 행위가 또 다른 제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쉽게 마무리가 지어지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나머지 단편 역시 순간을 곱씹으며 작품이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다.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