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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평점 :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주희입니다.
순전히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 책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다면 독자로서 무모한 도전일까? 그 책이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면 어떨까?
책의 앞표지를 보면 책의 제목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아래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라는 부연 설명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글쓰기 강의를 담아낸 책이다. 원제목은 '거리의 문체론'이다.
책의 뒤표지를 보면 저자는 '독자를 사랑하지 않는 글쓰기는 백전백패!'라고 주장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독자를 사랑하는 글이어야 독자로부터 사랑 받는 글이 된다는 뜻이다. 결국 글쓰기에서도 인간관계의 원칙과도 같은 기브앤테이크(give & take)가 적용된다.
책의 저자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의 대표 사상가로 문학, 철학, 교육,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비판적 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국내에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비롯한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책의 앞표지에 저자의 이름을 내세운 것도 그의 화려한 작가로서의 경력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 우치다 다쓰루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띄우는 글에서 그가 '창조적 글쓰기' 강의를 시작한 것은 '글로벌'이라는 흐름 속에서 일본어가 야위기 시작했다는 위기감을 느껴서다. 그 결과 21세기에 들어와 일본의 지적 생산력은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한국에서도 자국어의 풍요로움이나 창조성에 대해 저자와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란다.
책의 차례는 총 14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한 꼭지를 '장'으로 표기하는데 이 책은 '강'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은 저자의 강의를 엮었다. 저자는 제1강을 읽고 나머지를 다 읽을지 판단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1강부터 독자들이 넘어야 할 고비라는 셈이다. 시작부터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제1강 <말과 글의 영역에서 사랑이란?>을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저자의 대학 강의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녹음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그래서 문체도 구어체다. 강의 안에 크게 단락을 나누어서 소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저자의 강의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나타낸다.
저자는 수강생들에게 과제를 내어줬다. '내가 만났던 가장 덜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천 자의 짧은 글쓰기다. 채점 기준은 설명하는 힘이라고 했다. 글을 쓸 때는 마음을 다해서 이야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독자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면서 언어가 지닌 창조성의 실질이다. 독자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글을 잘 쓰거나 정확하게 쓰는 능력을 제치고 가장 중요하다.
저자가 제1강의 제목에서 밝혔듯이 말과 글의 영역에서의 사랑은 독자를 향한 사랑이다. 그게 있어야만 좋은 말과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제10강 <살아남기 위한 언어 능력과 글쓰기>
책의 제목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 대한 저자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일본 사회는 이행기적 혼란에 있다. 저출산, 아동 학대로 인구 감소가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기 위한 리터러시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마음은 절박하다.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론'에서 텍스트란 짜서 완성한 것을 뜻한다. 텍스트가 끝없이 서로 얽히고설킴으로써 스스로를 생성하고 스스로를 짜서 완성해간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 텍스트만 읽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이야기할 때 내 안에 이야기를 하는 것은 타자다. 글을 쓸 때 펜을 움직이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존재다. 이것을 영감이라고도 한다. 마지막까지 글을 다 쓰고 난 이후 나는 그 글을 통해 깊은 만족감을 맛보는 나 자신이 보인다.
저자는 21년간 근무했던 고베여학원대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학기에 '창조적 글쓰기' 강의를 개설했다. 저자가 오랜 세월 언어와 문학에 대해 사유해온 것을 모조리 쏟아 붓고자 한 수업이었다. 그래서 저자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쳐든 독자라면 글쓰기에 왜 그리 잡다한 말이 많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의 강의는 철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문학을 추구하는 과정이어서 난해하다. 그래서 가볍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독자들은 지레 포기할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글쓰기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일본 최고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의 30년 내공에 힘입어 독자들도 글을 읽고 쓰는 혜안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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