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국어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두 편을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수업'과 '별'이다. 필자의 흐릿한 기억 너머에 '마지막 수업'과 '별'이 있다. 특히 '별'은 그 당시 사춘기 소녀였던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교과서인데도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최근에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알퐁스 도데의 연작소설이 출간되었다.책의 앞표지 그림부터 예사롭지 않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그림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머무를 때 자신만의 화법인 꿈틀거리듯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그때 론강을 끼고 있는 아를에서 어두운 밤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중세시대의 성벽이 남아 있는 작은 마을 아를은 여러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곳이었다. 고흐 뿐만 아니라 알퐁스 도데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책의 뒤표지에서 '우리가 알던 별은 어떤 이야기일까요?'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어서 '사랑과 공감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연작소설로 새롭게 만나는 '풍차 방앗간 편지', 그 진짜 이야기'라고 답하고 있다. 이쯤에서 그동안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은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 새삼 다시 소설을 출간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그 답은 새움이라는 출판사에 있었다. 새움은 책의 번역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외국어로 쓰여진 원작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차이에 따라서 어감이 달라질 수 있다.작가 알퐁스 도데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빛과 색채의 고장이라 불리는 프로방스의 풍경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재작년에 프로방스의 아비뇽, 액상프로방스, 님, 아를, 오랑주를 두루 여행했던 필자는 도데의 연작소설 '별들'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 곳의 아름다운 풍경이 떠올랐다.책의 차례를 보니 총 24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별들 - 어느 프로방스 양치기의 투고>가 눈에 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이다. 연작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문>이 나온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던 알퐁스 도데가 프로방스 중심부 론 계곡에 위치한 풍차 방앗간을 시 창작 활동의 장소로 양도받는다는 서류다. 그리고 <정착>부터 풍차 방앗간에서 쓴 도데의 편지가 이어지고 있다. 각 편지마다 도데의 감성과 상상력이 발휘된 서정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구어체다. 문어체에 비해서 말투가 친근하게 다가온다.<스갱 씨의 염소 - 파리에 사는 서정시인 그랭구아르 씨에게>를 보라. 그랭구아르는 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곱추'에 등장하는 가난뱅이 시인이다. 가공의 인물인 그랭구아르에게 스갱 씨의 염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지 안의 이야기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스갱 씨의 염소는 염소가 마치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다.마지막에 그랭구아르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눅대와 밤새와서 쌈을 혔다능, 그랴서 겔국 아츰에 눅대에게 잡아멕힌.'이라면서 프로방스 일꾼들의 말을 전한다. 이 표현이 재미있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중부에서 쓰는 표준어와 남부 프로방스에서 쓰는 지방어 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서도 사투리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사투리일까?<별들 - 어느 프로방스 양치기의 투고>는 편지의 발신인이 도데가 아닌 양치기로 설정되어 있다. 산속에서 양떼를 모는 양치기 앞에 주인 아가씨 스테파네트가 노새를 끌고 나타난다. 스테파네트는 바구니의 식료품들을 꺼내 놓고 되돌아가다가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그만 화사한 옷까지 젖는다. 어쩔 수 없이 모닥불 앞에 앉아서 양치기와 밤을 지샌다.'이제 시냇물은 훨씬 맑은 소리로 흐르고, 연못은 작은 불꽃들이 불을 밝힙니다.'로 시작하는 단락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 따라서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숲 속에서 가만히 어두운 밤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 <상기네르의 등대>에서 '거친 풍경을 한 붉은빛의 섬을 상상해 보게나.'로 시작하는 긴 단락은 독자가 읽으면서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림을 그릴 정도로 자세하다. 작가가 주문한 그대로 상기네르 섬을 상상할 수 있겠다.<황금 뇌를 가진 남자의 전설 - 재미있는 이야기를 신청하신 부인께>는 뇌를 갉아먹으며 사는 것을 강요받는 불쌍한 사람들의 삶을 빗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 그림책에도 등장한다.연작소설이지만 24편의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는 각자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인물이 중심인 소설이 때론 배경이 중심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책의 제목이 '별들'이 아니라 '풍차 방앗간의 편지'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별들'을 대표 제목으로 내세워서 독자들의 눈길을 끌게 하려는 의도가 있으리라. 세상살이에 지친 독자들이 알퐁스 도데가 쓴 '별들'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학창시절의 감성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었다.https://m.blog.naver.com/geowins1/22124145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