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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인문학 -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학창시절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사마천이 쓴 '사기'에 대해서 한 번씩 들어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사마천의 사기"를 여러 번 연습장에 적어가면서 외웠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사마천과 그의 대표작 '사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다산초당에서 3천 년 역사에서 찾은 사마천의 인간학 수업 '사기 인문학'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도 사마천과 '사기'를 함께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사마천이 쓴 '사기'가 연관수식어처럼 튀어나오는 것일까?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사람은 절대 적으로 돌리지 말라!" 라고 단언한다. 저자의 말대로 라면 사마천의 '사기'에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저자 한정주는 역사평론가이면서 고전연구가이다. 필자는 최근에 그가 지은 책 '문장의 온도', '율곡 인문학'을 읽고 서평을 작성했던 적이 있다. 그는 한자로 적혀 있는 고전을 저자 특유의 따스하고 냉철한 시선으로 분석해서 쉽게 풀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마천이 쓴 '사기'를 어떻게 풀이했을지 궁금하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사마천이라는 인물과 그가 쓴 역사서 '사기'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사마천은 동양 역사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면서 환관들에게도 상징적인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죄를 지어서 죄인의 생식기를 제거하는 치욕스런 형벌인 궁형을 당했다.
중국 한나라 무제 때의 일이다. 당시 한나라의 가장 큰 적인 흉노와의 전쟁에서 장군 이릉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무제는 분노하면서 이릉의 가족들을 몰살하려고 했다. 이때 사마천이 나서서 이릉을 변호했다.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극형을 명했다.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에게 물려받은 역사서 '사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치욕적인 처벌을 감수했다.
'사기'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황제 헌원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황제의 역사를 다룬 <본기>, 주요 사건의 연대를 다룬 <표>, 당대의 풍속과 제도를 다룬 <서>, 제후들의 일대기를 다룬 <세가>, 세상에 이름을 떨친 보통 사람들부터 이민족의 역사를 다룬 <열전>까지 방대하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법칙, 부와 권력의 비밀, 인간과 사회에 관한 모든 것을 밝혀내려 했다. 인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로서,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기'가 위대한 책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사마천의 '사기'를 읽은 사람은 절대 적으로 돌리지 말라!" 라고 당부한다.
차례는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 공간을 오가면서 사마천의 '사기'에서 주는 공통적인 교훈을 하나의 범주로 묶었다.
1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역사의 절대 법칙>는 왜 영웅 항우가 아닌 시정잡배 유방이 천하를 얻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2부 <창업의 전략과 수성의 전략>은 최초의 황제 진시황의 성공과 몰락을 분석하고 있다.
3부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치는 필승의 비법>은 손자, 오기, 한신에게 배우는 백전백승 천하를 평정하는 법을 알려준다.
4부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한무제, 상앙, 소하에게서 배우는 승리하는 리더와 실패하는 리더의 특성을 제시한다.
5부 <휘둘리지 않고 부를 다스리는 법>은 범려, 백규 등 역사 속 부자들이 말하는 부의 법칙을 알려준다.
6부 <권력을 가질 때 주의해야 할 것들>은 이사, 진섭, 여태후가 보여주는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다.
'사기'의 원본을 완역한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 각자 거기서 사마천이 주는 메시지를 파악해도 좋다. 그런데 완역본을 읽기 부담스럽다면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분석한 '사기 인문학'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왕이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독자들이라면 5부 <휘둘리지 않고 부를 다스리는 법>을 주의깊게 읽기를 바란다. 최고의 정치가에서 최고의 상인으로 거듭난 범려와 백규를 통해서 부를 거머쥐는 법을 보여준다.
<화식열전>에 따르면 범려는 스승 계연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 군대를 지휘하는 이치, 재물을 다루는 이치가 같다고 일러줬다. 그 일부를 인용하면 범려가 주먹구구식으로 돈을 벌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자리를 보면 풍년과 수해, 기근, 가뭄 여부를 알 수 있다. 가뭄이 들 것 같으면 미리 배를 준비하고, 수해가 들 것 같으면 미리 수레를 준비하는 것이다.
(중략)
값이 오를 때 오물을 배설하듯이 팔고, 값이 떨어질 때 귀한 구슬을 넣듯이 사들인다. 이처럼 물자와 돈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활발하게 유통되도록 해야 한다.'
(200,201쪽)
정치와 군사와 상업은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을 얻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시세, 그러니까 현실의 흐름과 변화의 추이를 살필 줄 알면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춘추시대 후기 초나라와 월나라에 살았던 범려가 이룬 부자가 되었던 방법은 21세기 지금도 유효하다. 돈을 벌려면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서 그들의 주머니를 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사기'는 시대에 뒤처진 낡고 진부한 책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수많은 독자들이 읽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사기 인문학'을 읽고 나니 사마천이 쓴 '사기'를 읽어보고 싶다. 마침 책장 한 구석에 먼지 쌓인 '사기' <본기>와 <열전>이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당장 읽어야겠다. '사기'를 읽기 전 '사기 인문학'을 만난 게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