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
이시이 모모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샘터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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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은 제목 그 자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책을 싫어한다면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 눈길이 간 독자들이라면 필자의 말에 수긍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책, 정원, 고양이가 있어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의 그늘막에서 졸음에 겨운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누구나 그 상황이 좋다 못해 행복해질 것이다.

작가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허둥지둥 급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라면서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다. 우리는 작가의 말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급급해서 정작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나쳐 오고 있다.

작가 이시이 모모코의 약력에서 눈에 띄는 게 있다. 1907년에 태어나서 2008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찌들려 살아가다 요절하는 여느 작가들관 달리 장수했다. 최근 백 세 시대를 거론하고 있지만, 20세기 초에 태어난 사람들은 환갑을 넘기기도 어려웠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작가의 서문이 없다. 바로 차례가 나오고 본문을 시작한다. 굳이 작가가 서문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작가의 장수한 삶에서 그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겠다.

'책과 정원, 고양이가 있어 좋은 날'은 이시이 모모코의 에세이이다. '애정의 무게'부터 '백일홍 나무 아래의 인연'까지 총 39편의 짧은 산문이 실려 있다.

어머니는 어느 날 봄 뇌내출혈로 정신을 잃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어머니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포기한 뒤에도 희미한 불꽃이 타는 한 지켜드리려고 했다. 의사가 기적이라고 했는데, 약 백 일이 지나자 어머니는 눈을 뜨셨고 봄 풍경이 갑자기 여름 풍경으로 바뀌었다면서 울먹이셨다. 그 후로 일 년, 어머니는 내 돌봄을 받는 아기가 되었고 평생 일하느라 가죽처럼 변해버린 손은 부드러워져서 '귀족의 손'처럼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 일 년간 어른이 되어서도 어리석기 그지없는 딸에게 최고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 사셨다고 믿는다. 용서와 감사. 어머니는 몸소 그것을 내게 알려주셨다.
(102, 103쪽)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한 마지막 일 년'을 회상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작가가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아도 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니를 돌보는 나날이 얼마나 힘들고 기나긴 일 년이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어머니로부터 용서와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작가의 올곶은 심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때 가장 아름답게 핀 백일홍 나무 아래에 고양이를 묻어 주었는데, 상대가 고양이라도 십일 년이나 같이 살면서 둘 사이에 끈끈한 인연이 생기는 법이다. 봄이 되어도 잎이 가장 늦게 피는 백일홍 나무가 유독 추워 보여서 며칠 전부터 마음이 쓰인 차에 가쓰오부시를 고양이 선물로 받아 크게 위로받은 것을 깨닫고 인간은 평생에 걸쳐 마음의 인연을 참 많이 맺는구나 생각했다.
(248쪽)

책의 마지막 '백일홍 나무 아래의 인연'에 나오는 구절이다. 십일 년간 한집에서 가족으로 지내왔던 고양이가 죽었다. 작가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공허할까? 그런데 가쓰오부시를 선물로 받고 거기서 위로를 받는다. 작가가 덧붙이지 않아도 독자들은 평생에 걸친 마음의 인연에서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작가의 은밀한 일기를 엿본 것 같다. 일기를 훔쳐 볼 때의 짜릿한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남들보다 오래 살았기에 그만큼 희노애락의 사연도 많다. 그런데 작가는 매사 감정을 저울질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의 동요없이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롭다.

작가가 공허한 마음을 선물로 위로받았듯이 독자들도 이 책으로 마음을 위로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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