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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디자인 문화 탐사
김민수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좋은 책이다. 저자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책이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이라는 물리적 실체 또한 훌륭한 책이다.
김민수는 서울대학교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부당하게 탈락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여러 보도를 통해서 나는 김민수가 진보적 인물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했다. 기존의 모던 디자인에 대한 그의 예리한 비판을 보면서 나의 추측이 어긋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 문화 상징의 변증법'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의 틀을 제공해 준다. 저자는 지금까지 디자인이 산업의 효율적 수단으로만 취급되어온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문화로서의 디자인를 내세운다. 문화로서의 디자인은 통계적인 수치로 계량화될 수 없는 복잡한 '일상 생활'을 문제삼는다. 기존의 디자인은 복잡한 소비의 양상을 단순화 시키고 소비자의 주관을 무시한 객관적 계량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포스트모던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제안한다. 그것은 유기체적인 관점에서 '일상 삶의 생성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고급/저급의 이분법을 해체하면서 키치, 사이버스페이스 등의 문화적 범주까지를 포괄한다.
이 책은 사회학, 미학, 인지론, 정신분석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관련학문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설득력있는 논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소비자들의 능동적 기능을 밝혀내는데 주력한 부분은 주목할만하다.
4장의 내용은 그의 예리한 현실 비판의식을 엿보게 하는데, 그러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역질나는 수구적 가치관들이 김민수를 재임용에서 탈락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책의 편집과 표지 디자인을 저자가 직접 맡았다고 하는데, 내용과 관계없이 책 자체가 하나의 미학을 보여준다. 여기서 영상문화 혹은 멀티미디어 문화에 밀리고 있는 인쇄문화의 한 가능성을 엿본다. 내용에 따른 적절한 도안디자인이 인상깊은데, 예컨데 제 3장의 '사이버스페이스 사이버디자인'에서 도안에 은색을 사용한 것은 사이버틱한 느낌을 적절히 살리고 있다.
3장에서 주변적인 자료나열(사이버 시대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진화를 설명하는 부분)은 군더더기로 생각된다.
이번 독서를 통해 좋은 사람을 알게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