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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독서모임을 하게 됐다. (거의 소원 성취..) 한 달에 한 번씩 한 작가의 책을 읽어내려가는 모임의 이번 테마가 김연수가 됐기 때문이다. 주최하시는 분이 내게 리스트를 꾸릴 선택권을 주셔서 고심하다 첫 책으로 이 책을 꼽았다. 원래 모임 하루 이틀 전에 허겁지겁 책을 읽지만, 이번 책은 조금 일찍 펼쳤다. 다시 읽을수록 작가 모임의 첫 책으로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그의 박학다식함이 적당히 묻어있으면서 (지나치면 떨어져나가기 십상이니까) 독자들은 모를지언정 상황에 알맞는 우리말 표현을 쓰겠다는 고집스러움이 엿보이고 그러면서도 문장은 너무나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그냥 이야기 자체가 맛깔난다. 또 <뉴욕제과점>은 작가가 자전소설이라고 밝혔으니 왠지 작가 입문작으로도 걸맞아 보인다.
내 김연수 독서는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중고등학교때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고, 그러다가 그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온갖 TMI를 알게 된 나머지 마치 그를 잘 아는 것만 같은 단계에 도달했다. 물론 나는 김연수의 1%도 알지 못할텐데, 그 사실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가 내 삼촌쯤은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 여전히 든다.
그래서 그의 조카쯤 되는 것만 같은 심정으로, 삼촌의 어린 시절 앨범을 들추어 보듯 이 책을 읽었다. (폰삼촌,,) 아무리 옛날 사진이래두 지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듯, 이 책도 내게 그랬다. 김연수가 이때부터 단편을 이렇게 써 왔군.. 회고록의 형식으로, 지나간 과거와 그 과거가 내게 남긴 흔적을 들추어 보면서, 기억을 차근히 재구성해나가는 거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하나라고 믿었던 길이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것. 하나는 눈에 보이는 길이고, 나머지는 보이진 않지만 줄곧 존재했던, 회고를 통해 의미를 찾고 드러난 길이다. 예컨대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에서 태식은 게이코가 떠나간 뒤, 김 서린 유리창 위에 남겨진 손바닥의 손금에서 희끄무레한 길을 본다. <첫사랑>에서는 유년 시절의 나비가,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에서는 애기똥풀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천착의 과정이 다른 장편이나 유령 작가보다는 어렵지..않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 김연수는 그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끌어와서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기보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재료로 삼는다. (이것도 김연수의 기억이 아닌 허구적 기억이지만...) 그 장벽이 낮다.
또 너무나 김연수식 인물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에서 80년 5월의 일을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신문을 스크랩하는 '나'의 아버지처럼. 무의미하게 글자를 탐독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 (이러한 인물들은 그의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변주된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