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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며 적절한 조언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료이자 스승이 있었다. 10년간 싸우고 화해하고 협력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수전의 오빠가 남긴 이메일로 이 둘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다.
책 제목은 고인이 된 과학자를 기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디어 올리버는 두 신경과학자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서적 분류가 과학 에세이인 것은 두 과학자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연구 내용도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6년 1월 10일 수전 배리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올리버 색스를 처음 만났지만 이후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2002년 2월 셋째 주, 마흔여덟이 된 수전은 루지에로 박사의 프리즘 안경 덕에 사시와 입체맹(사물을 3차원으로 인식하지 못함)을 치료하게 된다. 3년 후 올리버 색스("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이자 저명한 신경과학자)에게 치료 경과를 정리해 편지로 보낸다. 성인이 된 다음에는 입체맹을 고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는데, 이 정설이 뒤집힌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올리버는 2005년 1월 3일 수전에게 답장을 보내고 이둘의 편지는 십 여년간 이어진다.
51세, 72세 두 과학자의 20년 나이차를 뛰어넘는 따뜻한 편지가 시작된 것이다.
호기심 강한 올리버는 편지를 통해 입체맹 이전과 이후 수전이 어떤 식으로 세상이 봤는지 질문하고 직접 만나서 실험까지 한다. 입체맹에 대한 의견충돌도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두 과학자는 서로 양보하고 화해한다. 올리버는 수전의 이야기를 "스테레오 수"라는 내용으로 발표한다. 그뿐 아니라 두 과학자는 서로의 책과 연구, 가족에 대해 조언을 하고 격려한다.
수전의 눈이 좋은 쪽으로 개선된 것에 반해, 2005년 12월 16일 올리버의 오른쪽 눈에는 커다란 암점과 섬광이 나타난다. 망막에 안구 흑색종이 발견되고 이 종양은 올리버의 시력과 목숨을 앗아간다.
책에는 두 과학자가 타자기와 친필로 쓴 실제 편지가 첨부되어 있다. 둘은 처음에는 색스 박사님, 배리 교수님이라고 칭했지만 머지않아 친근한 "올리버에게(dear Oliver)와 "수에게(dear Sue)"가 호칭을 변경한다.
두족류인 오징어를 사랑하는 올리버는 편지지 상단에 오징어 문양을 찍어놨다. 올리버의 오징어 취향을 안 수전은 올리버에게 오징어 인형을 선물한다. 올리버는 수전 생일에, 나이에 맞는 원소 번호를 찾아 원석을 선물한다.
전문분야에 관해서는 방대한 지식이 있지만 둘은 지독한 길치였다. 수전의 남편 댄으로부터 길치 방지용 나침반 모자를 선물받고 둘은 이에 대해 토론한다. 그리고 설문을 통해 방향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 단서를 이용한 보이 스카우트같은 사람, 길치인 노답을 찾아낸다. 사소한 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호기심 많은 두 과학자의 모습이 귀엽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올리버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암시가 나온다. 타자기로 친 편지지 속 소문자와 대문자, 몽블랑 만년필로 쓴 글자 크기를 다시 본다. 골절과 수술, 암 전이를 밝힌 편지글도 슬퍼 보인다.
올리버 색스는 2015년 08월 30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책을 쓰고 신문에 기고할 글을 남긴다. 병이 깊어 눈과 손을 쓸 수 없었을 때에도 연인과 비서의 도움을 받아, 친구들에게 작별 편지를 남긴다.
책을 읽는 내내 수전 배리가 올리버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올리버가 수전을 과학자로서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는지 엿볼 수 있다. 과학 에세이라 일부 용어가 다소 낯설지만 큰 틀에서 보면 두 사람의 인간적인 우정과 따뜻한 삶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