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는 기술 -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 고전으로 오늘 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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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으로 유명한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로본 대학 법대를 중퇴하고 수많은 가명으로 글을 쓴다. 본명으로 쓴 최초의 글이 1829년에 나온 <올빼미당원 (Les Chouans)>이라 올빼미당원을 발자크의 데뷔작으로 치지만, 발자크는 1829년 이전에도 수많은 글을 썼다.

발자크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인쇄소를 차리고 유명 작가의 문학서적과 가명으로 쓴 자신의 책도 출판하지만, 경영에는 소실이 없었는지 결국 빚만 잔뜩 남기고 사업을 말아먹는다. 빚을 갚기 위해 하루에 커피 40잔씩 마시며 발자크는 글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쓰지도 않는 글을 대가로 돈을 빌려서 다른 채권자에게 빚을 갚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생전에 유명한 작가 반열에 올랐음에도 왜 빚에 허덕였는지, 정말 독특한 작자가 아닐 수 없다. 정원에다 기후에 맞지 않는 사치스러운 파인애플 나무를 키우면서, 동생에게는 옷이 해질까 봐 외출도 못 나간다는 편지를 쓴다. 샤를르 보들레드는 그런 발자크를 보며 글을 쓰는 재주만큼이나 빚 청구서를 쓰는 재주가 있다고 언급한다. <빚 갚는 기술>을 읽다 보면 발자크의 생존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이 아니라 실제 경험담이구나.

<빚 갚는 기술>은 발자크가 인쇄소를 운영하던 시절인 1827년, 가명으로 쓴 책이다. 화자인 조카 앙페제 남작(발자크의 가명)이 삼촌의 유지에 따라, 삼촌이 어떻게 많은 채권자들에게 많은 돈을 빌리고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 경험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결국 돈 한 푼 갚지 않고도 채권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한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부제가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이다. 채권자 입장에서 들으면 속이 터질만한 제목이다^^.

삼촌 앙페제 남작은 채권자를 생산자로 보고 채무자를 소비자로 본다. 가난한 채무자는 돈 많은 채권자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빌려 사는 것이 문제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빌린 돈을 갚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갚지 말라고 한다. 삼촌은 빚의 종류, 채권자와 채무자의 종류, 여러 나라에서 빚을 안 갚으면 발생하는 일 등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나열한다. 진지하게 읽으면 이 삼촌은 정말 몹쓸 사람 같아 화가 나지만, 별별 사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라고 생각하면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삼촌은 부자에게 돈을 빌리라고 한다. 그들에게 자신이 빌린 몇 푼의 돈은 큰 금액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채권자들을 오전 10시부터 집 응접실에 대기시키고 순서대로 한 명씩 이야기하라고 한다. 웃음 포인트는 돈을 갚는 게 아니라 돈을 더 빌릴 궁리를 하라는 것! 채권자들이 돈을 갚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돈이 없을 수도 있다고 짧게 얼버무리며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 언제든지 (죽지않고) 돈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모습(희망)을 보이는게 중요하다고도 한다. 삼촌이 채권자들에게 끊임없이 희망고문을 하며 돈을 당당하게 빌리는 모습, 채무자가 아파하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는 채권자의 모습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나 돌아보게 된다.

삼촌은 집을 빌릴 경우 어떤 수위를 만나야하고 어떤 집을 빌려야 하는지도 알려준다(길이 보이는 5층 이상 아파트로 빌려야 한다. 왜냐하면 채권자를 오는 것을 보며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고 채권자가 높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채권자가 지칠 수 있기 때문이다). 듣다 보면 발자크의 삶과 너무 겹친다. 채권자를 피해 다니느라 이사를 수없이 다니고, 늘 정문과 후문(도망치는 용도)이 함께 있는 집을 선호하는 발자크 역시 채권자를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심지어 후원자가 그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느라 바쁜) 발자크를 만날 수 없어 후원해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책을 다 읽고 앞표지를 다시 본다. 가난한 자는 부자의 주머니를 털고 있고, 부자는 가난한 자의 주머니를 뒤지나 나오는 게 없다. 그래도 둘은 서로 손을 잡고 협력한다. 이것이 글 속 삼촌과 어쩌면 발자크가 생각하는 채권자와 채무자, 즉 생산자와 소비자의 모습일 것이다. 책의 말미에 화자는 삼촌은 이런 방법으로 살아왔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채권자와 채무자가 되기 쉽지 않다며 따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지 불법적인 행위를 따라하면 안된다!

알쓸인잡(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서 김영하 작가가 발자크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발자크의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발자크와 너무나 닮아있는 <빚 갚는 기술>을 읽게 되어 너무 재미있었다. 빚이라는 것은 발자크 개인에게 있어서는 무거운 짐이지만, 빚이 있었기에 우리가 발자크의 수많은 글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헤이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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