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p92 <미래과거시제> 중에서

김초엽 작가의 에세이 <책과 우연들>에 배명훈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가 소개되었다. 배명훈 작가의 이력만큼이나 작가의 SF소설이 궁금했는데, 마침 작가의 SF 단편들을 묶은 <미래과거시제>가 출간되어 읽어보았다.
이 책은 저기능 로봇 마사로와 심해 도시 건설 프로젝트 인간 책임자 유희의 이야기를 담은 <수요곡선의 수호자>, 2113년 차카타파음이 사라진 미래 한국을 그린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미래과거시제로 말하는 사람을 그린 <미래과거시제>, 지구에서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 안에서 학창 시잘 종이접기를 잘 하는 친구를 20년 만에 만난 <접히는 신들>, 잠실 롯데타워에 나타난 외계인과 지구접선인을 그린 <인류의 대변자>, 로봇조종사와 전쟁의 이야기를 그린 <임시 조종사>, 응원 애플리케이션에 관한 <홈, 어웨이>, 반은 사람이고 반은 기계인 <절반의 존재>, 스토리 생성 프로젝트를 담은 <알람이 울리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당 소설이 끝날 때마다 작가의 말이 나와, 앞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소개해준다. 그래서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로봇이야. 수요곡선의 수호자지.p19 <수요곡선의 수호자>중에서

사람보다 뛰어난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득세하는 세상, 사람들은 창작의 의욕을 잃고 실업자가 되어 간다. 그때 <오직 소비만>하는 로봇 마사로가 나타난다. 요즘 챗GPT 등 뛰어난 인공지능이 나타나 걱정이었는데, 마사로가 손을 모으고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격리 실습실이 시간을 격리하듯, 한 시대는 바로 앞 시대와 거리를 두었다.
매우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p74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은 코로나 100년 후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차카타파음이 사라진 한국이 작품컨셉이라 맞춤법이 엉망이다.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실수한 줄 알고 맞춤법 오류를 제보해야 하나 고민했다. 역사학과 격리 실습 코스 중인 대학원생과 톱스타 여배우 서한지의 모습이 연애소설 같기도 하고 SF 소설 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미래과거시제에서는 튀르키예(구. 터키) 알트나이 교수의 튀르키예어 강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래과거시제로 말하는 강은신과 김은경 그리고 김은경의 친구 미술대 교수 우매희가 나온다. 김은경과 우매희라는 이름은 다른 작품에서도 나온다. 물론 처한 상황, 직업이 모두 다르고 이름만 같다. 배명훈 작가의 이름 돌려쓰기인가^^
접히는 신들에서는 서소희와 그의 학교 동창 김은경이 나온다. 서소희라는 이름 역시 다른 작품에서도 나온다. 이름이 중복되어서 처음에는 이 책이 단편모음집이 아니라, 옴니버스 장편소설인가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가 가도 되는 거야. 아, 정말이지 다행이지 뭐야. 인류가 충분히 어리석어서.
그래야 내가 마음 편히 대변할 수 있으니까.p203 <인류의 대변자>

인류의 대변자는 잠실 롯데타워, 타칭 사우론의 탑에 나타난 외계인의 이야기로 <접히는 신들>과 외계인의 형상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검은색 반짝이 옷(우주군 정복)을 입은 우주군 조은수와 공군 우매희가 나온다. 그리고 매우 현실적인 대한민국 이야기도 나와, 헉!했다. 우리에게 수능이란 무엇인가?!

묻지 마오 구인공고, 어떤 일인지 묻지를 마오.p221 <임시 조종사>중에서

<차카타파의 열망으로>가 맞춤법이 엉망이라서 읽기 힘들었다면 <임시 조종사>는 판소리처럼 쓴 소설이라 어려웠다. 취업난을 겪은 로봇 조종사 지하임과 전쟁에 관한 미래 이야기인데, 문체는 구한말 느낌이 난다. 읽는 내내 판소리 춘향전과 흥부가의 리듬에 맞춰 노래하듯 읽었다. 눈으로 읽는데도 숨이 차다.

이 하찮은 소설가 나부랭이, 늪에 빠져서 나부랭 나부랭 울고 있는 거 건져줬더니 어디서 에헴질이야? p280 <홈, 어웨이>중에서

나부랭 나부랭, 에헴질이라는 말이 너무 재미있었다. SF소설에서 이런 말 듣기 쉽지 않는데 말이다^^

그외 슬럼프에 빠진 작가 김은경과 친구 한민지(타칭, 한먼지), 라이벌 작가 서소희의 이야기 <홈, 어웨이>와 무엇을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한 <절반의 존재>, 홀로그램과 영화 인셉션이 생각나는 <알람이 울리면>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 나온 배명훈 작가의 SF 소설들은 톡톡 튀면서 무겁지 않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여운이 남는다. 특히, 로봇 마사루와 한벽을 뜯으면 남은 벽들은 어떻게 되냐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다혜 님의 추천사 <배명훈은 웃기다, 진지하다, 치밀하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북하우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