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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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알아낸 각각의 마술은 내게 교훈을 준다고 믿기를 좋아한다. 그러한 마술들 덕분에 우리에게 모든 요소가 다 주어지지 않을 때라도 해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441


이 책은 저자 조나탕 베르베르가 쓴 첫 장편소설로 2020년에 출간되었다. 프랑스 작가이지만 작품의 배경은 1800년대 미국 뉴욕이다. 미국의 남북전쟁, 핑커턴 탐정사무소, 심령술사 폭스 자매와 같이 실제 있었던 사건에 상상력을 더하여 만든 소설이다.


1888년 10월 뉴욕에서 거리 마술을 공연하고 있는 26살의 마술사 제니 마턴은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푼돈을 벌고 있다. 그때 한 남자가 취업을 제안한다. 남자는, 자신은 로버트 핑커턴이라는 탐정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현재 미국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는 심령술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40여 년간 속임수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심령술사 폭스자매의 트릭>에 대해 파헤쳐 보자며 (가난한 제니에게는) 거액을 제시한다.


제시는 아버지 구스타브 마턴이 생전에 지은 <마술사의 길>을 읽으며, 아버지와 같이 마술을 트릭예술의 일종이 아닌 신비한 무언가(심령술, 마법 등)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로버트 핑커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건은 007시리즈처럼 변장과 잠입, 칼과 나이프가 등장하여 펼쳐진다. 제니 마턴이 자녀가 둘 있는 과부 헤이즐 바월은 물론, 매춘부, 영국 여행객 애덜리아 말릭 등으로 변장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마술은 잘하지만 거짓말은 잘 못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선보이는 마술의 정직함과 신뢰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소설의 미스터리를 제니 마턴이 풀겠구나 싶었다.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가격이 있고, 그런 생각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그 가격이 늘 달러로 지불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p544


표지는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는 실제 폭스자매의 사진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왼쪽부터 마거릿 폭스, 케이트 폭스, 리아 폭스이다. 1848년 3월 31일 하이즈빌이라는 시골에서 갑갑함을 느낀 10대 자매 둘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심약한 어머니를 상대로 어떤 장난을 칠까 궁리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딱 소리가 울리고 유령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물론 마을 주민들은 자매가 전해주는 유령(죽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간다. 이 소식을 듣고 도시에 나가 살고 있던 서른이 넘은 맏언니 리아 폭스가 자매들을 도시로 데려간다. 그리고 이 세자매는 심령술사 사업을 벌이며 유명인이 된다.


한편 그즈음 앨런 핑커턴은 미국 최고의 사설탐정회사 핑커턴 탐정회사를 차리고 경찰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이며 명성을 떨친다. 그리고 30여년간의 활약을 뒤로하고 앨런 핑커턴은 사망하고 그의 회사는 그의 아들 로버트와 윌리엄이 잇고 있다.


심령술의 세계를 믿으며 미국전체로 퍼뜨리는 폭스자매, 합리적으로 추론하며 마술과 심령 따위는 믿지 않는 핑커턴 형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만 같다. 그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캐내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마술 세계를 선보이는 젊은 마술사 제니 마턴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의 (트릭을 푸는) 열쇠이다.


제니는 자신의 아버지와 핑커턴의 아버지가 쓴 책과 문장을 보며 사건을 복기한다. 그리고 그 책과 문장이 온전히 제니의 것이 되는 순간 사건은 풀리고 제니는 자유로워진다.


꽃집 주인이 그러는데 매번 다른 계좌에서 돈이 들어온다는군. 그렇긴 해도 꼬박꼬박 월요일마다 돈이 들어와서, 매번 모든 무덤에 꽃을 놓기에 충분한 액수래요.p436


책을 다 읽은 다음 실존하는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끌어다 쓰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묘미가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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