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신에게서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다 보니
나는 더는 기독교인도, 힌두교도도, 이슬람교도도,
불교도도, 유대교인도 아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진리를 깨닫다 보니
나는 이제 남자도, 여자도, 천사도 아니며,
더욱이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p282 <페르시아 고대 시인인 하피즈의 시> 중에서

튀르키예(구, 터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곳으로, 동양에서 봤을 때도, 서양에서 봤을 때도 이국적인 나라다. 작품 속 튀르키예 부르주아들 역시 자신들의 나라를 다양한 것들이 혼재된 혼란스러운 나라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 엘리프 샤팍은 노벨문학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튀르키예 작가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부모님을 따라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나라에서 살다가 지금은 투르키예 이스탄불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이스탄불의 사생아>로 인해 국가 모욕죄 혐의로 기소된 적도 있다고 한다(무죄로 풀려남). 작가의 이력과 이 책 이브의 세 딸을 통해 튀르키예와 중동의 종교 무슬림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형상 아래에는 "나쁜 것을 보았다.". 나쁜 것을 들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세 번째 형상 아래에는 '나쁜 짓을 했다!"라고 쓰여 있었다.
_중략_ 그녀는 세 번째 원숭이, 사악한 원숭이었다.
p411

이브의 세 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로 보이며 이야기된다. 하나는 페리의 현재 시점(2016년 튀르키예 부르주아의 만찬장)이고 하나는 과거 시점(페리의 어린 시절 가족사와 2002년 옥스퍼드 재학 시절)이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선량한 튀르키예 시민 페리는 사춘기 딸과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부유층의 평범한 주부이다. 페리와 그녀의 10대 딸은, 부유한 사업자가 연 부르주아 만찬에 가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고 틈새로 페리의 오래된 죄의식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그녀는 감춰둔 죄의식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책의 주인공인 페리는 튀르키예 집안의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집안은 무슬림 종교색이 강한 어머니와 둘째 오빠, 반무슬림 또는 무종교성향의 아버지와 첫째 오빠로 나뉘어 있다. 그녀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아버지의 편을 들어주려고 한다. 어린 시절 사건으로 아버지는 술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고 어머니는 종교에 더 심취하게 된다. 페리가 일곱 살 즈음 큰 오빠의 투옥으로 집안의 갈등은 더 커진다. 페리가 여덟 살 되던 해 납치를 당할 뻔하고 그로 인해 그녀는 안개에 싸인 아기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페리는 숨 막히는 튀르키예와 갈등이 많은 가족을 떠나는 한편,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유학을 생각한다. 그리고 2000년 영국 옥스포드로 드디어 유학을 떠난다. 영국에서 페리는 외로운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도 무슬림이 아닌 페리는 이방인이었다. 영국에서 지낼수록 페리는 어머니를 비롯한 고향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영 못마땅했다. 자유로운 연애와 혼전 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영국 사회와, 신부의 처녀성 검사를 위해 오밤중에 병원에 신부를 끌고 가는 튀르키예 사회...

이브의 세 딸은 무슬림 영향권 아래에 있는 세 여자를 의미한다. 반무슬람인인 튀르키예 여자 페리, 이란에서 태어났으나 정치적 망명으로 여러 국가를 전전하다 영국에 정착한 쉬란, 이집트계 미국인이자 모나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난다. 페리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아버지와 독실한 무슬림 어머니 사이에서 유유 부단하게 살고 있다. 쉬란의 가족은 이란의 내분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다. 쉬란은 자신들을 밖으로 내몬 이란과 무슬림에 대해 극히 거부감을 느낀다. 모나는 히잡을 쓰고 코란을 해석하여 알라를 섬기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무슬람이라는 영향 아래 우유부단 무슬림, 반무슬림, 극무슬림 성향을 띤 세 여자는 우연한 기회에 한집에 모여살게 되고 쉬란과 모나는 서로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 대립한다. 페리는 그곳에서도 침묵을 지킨다. 이브의 세 딸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은 종교적으로 친밀함과 공통점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서 지나치게 과장하다 보면, 신처럼 숭배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그 사랑이 반응이 없으면, 단번에 신을 파괴해 버리고요.
p552

옥스퍼드 대학의 신(神) 강좌의 안토니오 자카리아스 아주르 교수는 숫자 10은 온전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10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 즉 11이라는 불완전한 인원을 모아 강의를 개설한다. 2016년 부유한 사업가의 만찬에는 13명의 부르주아들이 만찬을 즐긴다. 불길한 숫자 13에는 집 주인인 사업가와 그의 아내, 페리와 아드난, 은행 CEO, 언론사 사장, 유명 기자와 그의 여자 친구, 성형외과 의사, 미국인 펀드 매니저(유일한 외국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광고 회사 대표 (후에 심령 술사가 더해져 14명이 됨)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국내 정세가 악화되면 언제든지 해외로 이주할 수 있는 부르주아이다. 그래서 페리는 농담으로 이번 만찬을 튀르키예 부르주아의 최후의 만찬이라고 비꼰다.

만찬으로 가는 길과 만찬에서의 일, 만찬이 끝날 무렵 벌어진 일은, 과거에 있었던 페리의 기억과 맞물려 간다.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르다가 열린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는 무슬림과 관련된 사건들이 종종 언급된다. 그 중 하나가 9.11 사건이다. 그 뉴스를 보며 경악하는 사람들, 걱정하는 사람들과 조소를 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일이 발생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를 믿고 해명하는 사람과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들 또한 책에 나온다.

페리의 첫째 오빠 고문 사건에서는 우리나라 7,80년대 고문 사건이 떠오른다. 전기고문, 파이프 고문 등 끔찍한 고문 장면이 묘사된다. 둘째 오빠 하칸의 결혼식에서는 히잡 드레스를 입은 새언니의 모습이 나온다. 더위로 고생하면서도 드레스를 벗지 못하는 새언니와 달리 오빠는 결혼 예복을 훌훌 벗어버린다. 결혼식이 끝나고 새언니의 엄마는 신부의 허리에 처녀임을 나타내는 처녀 리본을 매 준다. 그리고 그날 밤 새언니의 처녀성을 의심하는 둘째 오빠와 그의 가족들, 명예를 위해 딸을 끌고 병원에 가는 새언니의 엄마... 내 마음속에 복잡한 심정이 인다.

영국에서 공부하여 유럽 문화를 본 페리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입을 다문다. 그리고 이 결혼이 유지될까 생각하지만 페리의 엄마(새언니의 시어머니) 말처럼 상처 위에 결혼은 계속 이어진다.

부르주아 만찬의 뼈 있는 농담도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쓰인 사회 종교철학 인문학 서적 같다.

(소담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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