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
노재승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를
누가 굽었다고 했던가

신간 검색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좀비물>에 대한 글을 보았다. 전직 국어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와 과외, 그리고 좀비? 내용이 특이해서 책에 관심이 생겼다. 표지만 보면 러닝 차림에 머리숱도 몇 가닥 안 남은 할아버지가 정면을 바라보며 <고전운문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전운문편을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속삭일 일인가! 내 웃음 포인트다. 할아버지 모습 뒤로 영화 <부산행>을 떠올리는 기차 추격신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단 돌비 사운드 페이지, 상영 중이라고 쓰여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목차를 펼쳐보니 정말 표지에서 말한 대로 한국 고전 운문에 대한 내용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운문들이 여기 다 나와있다. 제목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어구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뉘와 함께 돌아갈고, 얄리얄리 얄라썽 얄라리 얄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소.

목차를 보니 정말 고전 운문을 다룬 국어문제집 같은 책일까,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가 제목인데 진짜 만화책일까. 정답은 정말 고전 운문을 좀비물로 그린 만화책이다. 왜 좀비물에 수학능력시험에 나올범한 내용들이 나오는 거야?
작가 <노재승>은 현직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다. 작가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수업은 지루해하면서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줄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진다고 한다. 나 역시 중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 대학교 이야기, 기타 다른 사설은 참 좋아했었다. 수업은 좋아하는 과목만 좋아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눈빛이 흐려졌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거 같다. 그래서 작가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수업내용을 섞어보면 어떨까 해서, 5년 동안 <그래도 조금 공부되는 만화>를 그린다. 그리고 네이버 도전 웹툰에 연재한다. 검색해 보니 이 만화는 현재 네이버 도전 웹툰에 재연재 중이다. 2022년 수능에 맞춰 재연재하고 있는 게 참 흥미롭다. 학창 시절 고전 운문을 이렇게 배웠다면 내가 운문을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더 즐겁게 수업내용을 전달하려는 스승님이 계셔서 그 제자들은 성적과는 상관없이 그 수업 시간을 좋아할 것 같다.

만화의 주인공은 표지에 나온 70대 박삼술 할아버지이다. 전직 국어교사였던거 같다(아마, 작가의 먼 미래 모습이 아닐까 예상된다). 박할아버지는 손녀의 국어과외를 맡아서 해주다가 손녀의 친구와 아는 오빠의 국어 과외까지 같이 도맡는다. 수업을 잘 듣는 녀석, 아는 척하며 수업을 가로채는 녀석, 수업을 안듣는 녀석~ 교실에 있을법한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수업을 하던 어느 날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져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 할아버지는 학생들을 데리고 좀비 청정구역인 부산으로 떠난다. 영화 부산행을 보는거 같은데, 주인공이 공유가 아니라 기력이 부족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와 학생들의 티키타카도 재미있고, 부인 정옥순 할머니에게 구박을 당하는 모습도 너무 코믹하다. 작가님의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와 영화 캐릭터도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바르뎀>이 내 기준 제일 코믹했다.

네이버 웹툰 댓글을 읽어보니, 이 만화의 최강자는 좀비떼한테 습격을 당하면서도 국어 수업을 계속하는 박삼술 할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책 뒤표지에도 실려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세계관 최강자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정옥순 할머니이다. 좀비 보다 무서운 할머니라 할아버지는 집 앞에서 문고리를 돌리지 못한다.

무협지, 좀비물, SF, 패러디를 섞어 정신이 없지만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가 시대순으로 시를 읊어대는 통에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를 공부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운문을 만화로 읽고 싶은 중학생, 재미로 만화를 읽기에 찔리는 고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거 같다. 물론 나 같은 성인이 읽어도 재미있다. 책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고 싶으면 먼저 네이버 웹툰에 들어가서 살펴봐도 좋다.

(뿌리와 이파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