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헤르만 헤세하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쓴 작가의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른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공부를 한다. 그러나 엄격한 학교 규율을 버티지 못하고 몇 개월 만에 학교를 뛰쳐나와 자살기도를 한다. 일반학교에도 입학하나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 후 서점 견습원 일과 시계수리공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스 기벤트의 이야기 아니야 생각할 수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주인공 소년 한스 기벤트는 헤세의 분신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책벌레라고 불리는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신간 서적에 대해 이야기를 낼 때 함께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된다면 스스로에게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몇 번은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는 스스로 여유 있는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p16 <1부 영혼이 건네는 목소리> 중에서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와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시로 구성되어 있다. 총 3부로 이어져 있다. 헤세는 시간에 쫓기듯 독서를 하는 사람들과 공연 관람을 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자한자 고심하여 글을 쓴 철학자와 작가의 글을, 안락의자와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읽는 사람들이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나 역시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책 속 상황과 나의 상황이 일치할 경우에는 더욱 의미가 와닿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직도 좋을 책을 많이 선별하지 못해 마냥 읽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헤세는 성급하게 읽지 말라고 다그친다.

나는 그동안 편지를 통해 나에게 자살하겠다며 위협을 가하거나 혹은 자살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써 보낸 사람들에게 답장을 쓰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나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내 주었다. 자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긴 자살을 보면서 그것을 다른 종류의 죽음보다 더 소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p161 <2부 조건 없는 행복> 중에서

헤세는 삶을 견디는 방법으로 독서, 음악, 그림, 음주 등을 나열하였다. 그럼에도 삶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의 자살도 이해한다고 말한다. 자살을 권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결정에 이유가 있었으라, 삶을 소홀히 여긴 것이 아니라 그만큼 고통이 컸을 것이라고 말한다.

헤세는 전쟁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또한 문학과 정치를 다룬 잡지 <생명의 외침(Vivos voco)> 발행인으로서 자국민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로부터 비판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앞부분만 읽고 대답할 가치가 없으면 더 이상 읽지 않았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글을 쓴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 역시 힘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이상한 포스터를 제작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롯 유다도 자신의 스승을 배반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자주 배반을 당하여 그런 것에 이미 익숙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p275 <3부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교도 다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기차 여행을 하다가 피 흘리는 그리스도의 광고 포스터를 보고 헤세는 괴로워한다. 사람들이 이 포스터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자, 그는 그리스도가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배신을 당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헤세는 인도를 여행하며 불교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이를 바탕으로 <싯다르타>로 집필하였다. 헤세는 자신이 죽은 후 자신의 작품들로 출판업자와 관계자들이 돈을 벌 것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낸다. 자신은 죽어서 헤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삶을 누리고, 또다시 죽고 태어나 어쩌면 또다시 글을 쓸지도 모른다고 불교의 윤회사상을 언급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어떤 것도 아닌 무위로 있고 싶다고 한다. 삶은 굴곡진 만큼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고 싶었나 보다.

에세이 속에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신을 언급하며 우리의 역사와 비교한다. 그리고 니체와 같은 철학자는 물론 음악가, 정신분석학자들을 조목조목 나열한다(아는 것이 많아야 헤세처럼 하나씩 끄집어내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헤세는 1921년에 에세이를 쓰면서 자신의 마지막 전성기는 1919년였다고 말한다. 더 이상 좋은 글을 쓸 수 없자 이같이 되뇐 것이다. 쓰고 있는 싯다르타도 더 이상 쓸 수 없어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독자들은, 적어도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글쓰기가 힘들었던 대가의 억지가 섞인 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1922년 싯다르타, 1943년 유리알 유희를 출간하고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한다.

스스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언급하며 기쁜 날 보다 나쁜 날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헤르만 헤세. 표지는 베이비핑크에 밝은 녹색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가운데 고양이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헤르만 헤세가 있어, 처음에 이 에세이가 아름다운 삶에 대한 힐링 에세이인 줄 알았다. 표지만 힐링이고 안에 들어간 내용은 무겁다. 요즘 읽었던 에세이들은 가볍게 읽혔는데, 이 책은 꼬박 사나흘에 걸려 완독했다.

치열한 헤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에세이를 읽어보시길~ 그리고 독자가 이야기를 힘들어할 만할 즈음 그의 그림이 쉬어갈 시간을 내어준다.

(문예춘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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