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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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이 리커버 에디션으로 나왔다. 작가는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니며 창밖을 바라보다 얼굴이 하얘지고 놀랐다고 한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한 켠에 있었던 것 같다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라고 책 끝에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의 인물, 특히 초 나라, 월 나라 사람들은 늙고 죽어 가는 것에 초연하다. 초 나라 사람들은 늙어 때가 되면 홀연히 홀로 또는 무리 지어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 죽음을 맞이한다. 초 나라 왕인 목(木)도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아주 오래전 사람과 개와 말이 있었다. 개와 말은 사람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를 길들여 전쟁에 내보냈고, 말을 길들여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먼 옛날 초 나라가 있었다. 그리고 초 나라 아래에는 나하라는 강이 있고 초 나라가 세워지고 오랜 시간이 흘러 강 이남에 단 나라가 세워진다. 초 나라는 문자를 경계하고 문자에 묶여 사는 삶을 경하였으나 단 나라는 문자로 드러나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초 나라는 평평한 초원을 사랑하고 높은 건물을 경계하였으나 단 나라는 땅에 금을 긋고 성을 높게 쌓은 것을 즐겼다.

이에 초 나라는 단 나라와 전쟁을 한다. 목 왕은 죽기 전까지 아들 표(猋)에게 높은 돌담장을 경계하며, 글과 말에 묶여 사는 삶을 피하라고 유훈한다. 늙은 목 왕은 첫째 아들 표에게 전쟁을 맡기고 자신은 돈몰(늙은이들이 홀로 또는 여럿이 배를 타고 명도섬에 가서 죽음을 맡는 것)을 한다.

단 나라 왕 칭은 군장들에게 인색한 왕이었다. <상양성>이 초 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당하자 칭 왕은 가짜 왕을 내보내고 자신은 도망친다. 그리고 용맹한 군독 황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야백은 늘 싸움터에 있었으나 싸움은 남의 것이었다. 죽고 죽이는 인간의 싸움을 보면서, 야백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p144 <탈출> 중에서

초 나라와 단 나라 사람들 간의 전쟁 속에 말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초승달을 향해 달려가는 신월마의 후손 토하(초 나라 표의 군마), 지는 해를 향해 달려가는 비혈마의 후손 야백(단 나라 군독 황의 군마)를 비롯한 말들은 사람들에게 계속 말하고 묻지만 말(馬)의 말(言)은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 왜 재갈을 물고 사람을 등에 태워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늙고 병들어 어금니가 빠지기 전까지 말들은 재갈을 벗을 수도, 죽기 직전까지 짐을 내릴 수도 없다
.
배들은 점점 다가왔다. 귀 밝은 요망군 한 평이 물속에 긴 대나무를 박고 물의 소리를 들었다. 요망군은 멀리서 노 젓는 소리가 들린다고 군장에게 보고했다.
p107 < 돌무더기> 중에서

단 나라가 흩어지고 단 나라 사람들은 월나라로 퍼진다. 월 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하루 안에 장례를 치르고 혼백이 민망해질 수 있으므로 장례식장에서는 아무도 울지 않는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루어지고 짐승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원치 않는 굴레를 쓰고 살다 죽는다.

..말[言]이란 개 떼와 같구나. 풀어놓아서 마구 날뛰어야 힘이 생긴다. 말은 말[馬]로 막지 못한다. 개로도 막지 못한다.
p218 <삼등마> 중에서

초나라, 단 나라, 월 나라 모두 허구지만, 작가는 허구의 역사서를 언급하며 실제 있었던 기록인 양 서술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은 것, 죽는 것, 시체를 말려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가는 모든 것들이 원초적으로 씌어 있다. 그래서 한편의 잃어버린 오랜 역사서를 읽는 느낌이 난다.

단 나라의 왕 칭은 살아남기 위해 진짜 가왕을 앞세우고 자신은 도망 나온다. 진짜 가왕이 초 나라 군인들에 의해 죽자 진짜 단 왕 칭은 가짜 가왕이 되었다. 그리고 칭은 <모두들 진짜 왕이 죽은 줄 알았다면 나는 진짜 죽은 것이 아닐까> 계속 되뇐다. 초 나라가 경계하던 말(言)에 묶여 사는 삶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나이 듦과 그에 따른 죽음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들을 길들이고 소유하려고 한다. 그러다 모두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작가는 세상을 무로 돌리고 싶어 그 감정을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나 보다.

(파람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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