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카즈무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2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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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카즈무후'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말이 없고 자기 세계에 빠진 사람에게 흔히 붙이는 별명이다. '동'은 귀족 냄새를 풍기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다.
p8 <제1장 표제에 대하여> 중에서

동 카츠무후(Dom Casmurro)는 포루트칼어로 무뚝뚝 경, 퉁명 공이라는 뜻이다. 노란 표지에 독자를 바라보는 눈 하나가 인상적이다. 관음증이 있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어딘가 갇혀있는 사람이 나를 향해 살려달라고 쳐다보는 것일까.
표지도 인상적이지만, 출판사 소개 글에 <브라질의 문호가 쓴 1899년에 쓴 소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닮은 소설, 옆집 남자와 닮아가는 아들>이라는 내용이 있어 책 내용이 몹시 궁금하였다. 오셀로처럼 간신의 이간질이 나오려나, 오셀로처럼 주인공도 아내를 직접 죽이려나 궁금해하며 책을 읽었다.

이 이야기는 중장년이 된 벤투 산치아구(애칭, 벤치뉴)가 40년 전 여자친구이자 장래의 부인이 될 카피투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벤투 산치아구는 모든 사람들이 도련님으로 부르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다. 아빠 페드루 지 아우브케르키 산치아구는 농장과 노예를 소유하고 있고, 엄마 마리아 다 글로리아 페르난지스 산치아구는 신앙심이 높은 사람이다. 첫번째 아이가 사망하자 두 번째 아이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교회로 보내 사제로 만들겠다고 신께 약속한다. 딸일 경우 사제가 될 수 없어, 엄마는 딸을 원했으나 결국 아들인 벤치뉴가 태어난다. 벤치뉴가 어린아이였을 때, 엄마가 31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신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유산(아홉채 이상의 집과 많은 노예들)이 많아 벤치뉴는 여전히 풍족하게 자란다. 집에는 주제 지아스라는 쉰 중반의 집사 같은 객식구가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집안의 노예들을 치료해 줘서 아버지 사후에도 숙식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아버지는 주제 지아스가 의사인 줄 오해했으나 그가 의사가 아니라고 고백한다. 또한 집에는 다른 객식구도 둘이나 더 있는데 엄마의 사촌 주스치나 당이모와 형법전문변호사인 코즈미 삼촌(엄마의 오빠)이다. 코즈미 삼촌에게는 친구 카브라우 신부가 있고 이 신부에게 벤치뉴는 라틴어와 교리를 배웠다.

한편 옆집에는 거북이라는 별명을 가진 파두아와 그의 아내 포르투나타 부인, 벤치뉴 보다 1살 어린 카피톨리나(애칭, 카피투)가 살고 있다. 파두아는 복권 당첨의 행운을 얻었다! 파두아는 벤치뉴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산치아구 집안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내가 다른 약속을 하려고. 약속해, 내 첫아이의 세례는 너에게 부탁할게.
p133 <제44장 첫아이> 중에서

책의 1/3이 지나도록 오셀로와 닮은 소설, 옆집 남자를 닮아가는 아들에 대한 내용이 안 나온다. 10대 소년 소녀의 풋사랑 이야기만 나와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제45장 독자여, 고개를 저어라>편에서 지루함에 책을 버리고 싶었던 적이 없다면 이참에 이 책을 버려도 된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진짜로? 생각했는데 저자는 조금만 더 참고 읽어보라고 나를 토닥인다. 진짜 작가와 밀당하는 것처럼 다시 읽어나갔다.

옆집 카피투와 장래에 결혼을 하기로 약속하고, 신학교를 피해보려고 했으나 벤치뉴는 결국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성황에 결국 16세가 되는 1858년 성요셉 신학교에 가게 된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있었던 추억을 되뇐다. 신학생 에제키에우 지소자 에스코바르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이의 이야기를 한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벤치뉴는 카피투와 결혼하고, 에제키에우는 산샤와 결혼한다. 그러나 벤치뉴의 자신의 아들이 에제키에우와 닮은 것 같아도 의심하면서 이야기는 불행으로 치닫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카피투가 에제키에우와 밀회를 즐겼고, 카피투가 벤치뉴를 속여 에제키에우와 똑닮은 아들을 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피투는 나쁜 여자이고, 벤치뉴는 평생 순정을 바쳤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 불쌍한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카피투 유죄, 벤치뉴 무죄!

그러나 임소라 번역가의 해설을 보면 왜 이 소설이 오셀로를 닮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벤치뉴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다. 우리는 카피투의 이야기와 다른 이들의 직접적인 증언을 들어본 적 없다. 카피투를 법정에 세운 것도 벤치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벤치뉴이다. 심지어 벤치뉴는 법학을 전공한 유능한 변호사이다. 벤치뉴는 오셀로를 보면서, 그깟 손수건으로 부인을 의심하는 오셀로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확실한 증거가 있어서 카피투의 외도는 분명하다고 밝힌다.

똑같은 사건도 사건의 이해당사자가 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한다. 책을 다 읽고 꼭 해설을 읽어보길 바란다.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사람하는 고전이라고 하니 브라질 문학에 관심있거나 남미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공들여 읽어볼만하다.

(휴머니스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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