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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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1957년에 신랑과 신부 둘 다 결혼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고, 일부다처혼을 금지하고, 친인척 8촌까지 근친결혼을 금지하는 서양식 민법을 통과시켰다. 그후로 다양한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는 가부장적인 집약적 친족 관계에서 한층 더 멀어졌다. 1991년, 마침내 상속권이 동등하게 바뀌어 이제는 아들과 딸이 똑같이 상속을 받는다. 이 세 아시아 사회 모두에서 가톨릭교회 아래에서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유럽 결혼 양상 (European Marriage Pattern)'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신속하게 시행되었다.

p598 <Chapter 14 총, 균, 쇠 그리고 다른 요인들> 중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어릴 적부터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직업을 선택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일과 공부를 한다. 학교의 선생님은 나와 친인적 관계가 아니고, 직장의 사장님이나 선후배/동료 역시 나와 친인적일 가능성은 낮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결혼을 할 경우 일부일처제에 따라 한 사람과 혼인서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종교는 가질 수도 있고 안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한 일이 생길 경우 내가 아는 다양한 신들 중 하나에게 기도를 할 수는 있다.


이런 생활방식이 너무나 익숙해서 살아가면서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 책 위어드 Weird의 사전상 뜻은 ‘기이한, 기묘한, 기괴한’이다. 그러나 아라 노렌자얀, 스티브 하이네와 이 책의 저자 조지프 헨릭이 2010년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심리와 행동 실험에서 가장 흔히 활용되는 인구 집단에 W.E.I.R.D.라는 이름을 붙었다. 그 후 WEIRD는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부유하고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서양의 흔히 국제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리키는 말(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신어사전에서 발췌)로 등재되어 있다.


즉 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의 약자이다. 위어드의 세계에 익숙해 한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위어드가 왜 생겨났는지, 왜 기이하다고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행동심리학은 주로 서양(유럽, 미국 등)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되고 연구되었다. 그러다보니 그 결과는 전세계에서 통용될 수 없고, 서양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서양 내에서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가정, 대학에 올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 대학생 정도의 나이에 한정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치를 낸 것들이 많다. 한 동안 행동심리학자들은 이 근거를 가지고 전세계인들을 이 기준에 맞춰 줄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논문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근거를 가지고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을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위어드 WEIRD는 이상하고 기괴하다.


중세 유럽은 카톨릭 중심국가가 많았다. 카톨릭은 친족간의 결혼을 금지한다. 그래서 친족/씨족 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배우자를 찾아 먼 곳으로 떠나야 했다. 중세 카톨릭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 교황, 주교, 사제 등을 통해 죄를 씻어야 했다. 그러나 면죄부 판매, 카톨릭 교회의 부정 등이 원인이 되어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신교가 탄생한 것이다. 신교(기독교_프로테스탄트)는 사람들이 스스로 죄를 씻고 구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교를 믿는 이들은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씨족사회가 무너지고,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익명의 사람들끼리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에 따라 근명성실해야 하기때문에 시간을 아껴서 일을 한다. 속으로 나쁜 생각을 한 것은 실제로 나쁜 생각을 한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나쁜 마음을 먹고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는 행위를 극도로 부정하게 여긴다.


속마음과 다른 겉치레에 대해서 많이 배워온 나는 의아했다. 실험결과를 보니 한국(서울)의 경우 집단주의 성격이 높다. 나는 위어드쪽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몇몇 사례들은 나를 비위어드로 만든다. 유대인의 경우 마음 속으로는 부모를 싫어하더라도 겉으로는 안부인사도 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독교 위어드의 경우, 그 행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범죄행위의 경우, 고의냐 실수냐를 두고 위어드 집단과 비위어드 집단의 의견도 다르다. 나의 경우 범죄행위가 살인과 같은 중대행위가 아닐 경우, 예를 들면 실수로 자기 가방인 줄 알고 남의 가방을 가져간 경우 고의로 가져간 것 보다 처벌이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 위어드집단은 고의와 실수 모두 동일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유럽은 결혼가족강령(친족간 결혼금지, 일부일처제, 부모로부터 독립거주 등)으로 씨족, 친족간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대신 타인과 학교, 종교, 도제, 상업길드 등으로 묶이게 된다. 전혀 모르는 타인과 계약이 이루어지므로 법이 구체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당시 아시아로 대표되는 중국이 친족간 신뢰를 기반으로 계약를 한 것과 대비된다. 중세유럽의 결속력은 학교로 이어지고, 중세 유럽에 대학교가 다수 설립되는 계기가 된다. 대학에서는 기존의 가치를 뒤집는 다양한 의술과 과학, 천문학 등이 발표된다. 또한 집단 보다는 개인에 집중하므로, 이때 부터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을 경우 최초발견자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보일의 법칙, 피타고라스의 정리(처음에는 피타고라스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음) 등이 그러하다.


비개인적 친사회성이 높고, 공평한 규칙 준수를 바라고, 인내심이 높고, 개인중심적인 위어드 WEIRD의 결과를 보여주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나는 당연히 위어드 WEIRD 성향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들을 보니 위어드도 비위어드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 있었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도 어떤 집단에서는 유효한 실험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실험실에 마시멜로 1개를 놓고 기다리면 더 많은 마시멜로를 준다고 아이들에게 약속했을 때 오래 기다린 아이가 인내심 높은 아이이고, 그 아이들이 나중에 더 성공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실험이다. 그러나 수렵채집을 하거나 서구 위어드 WEIRD집단 보다 덜 문명화된 바카야족이나 하드자드족은 모든 것을 공유하므로 지금 하나를 받느냐 나중에 다섯개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 받는 다섯개가 모두 내 소유가 아니고, 앞서 제시된 물건도 온전한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에게 주로 있는 다섯개의 독자적 인성(p486 참고)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아닌 WEIRD에 한정된 것일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양성평등의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가족이 재조직화 및 축소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점차 우리의 육체노동과 가장 힘든 인지 업무의 다수를 대신하고 있다. 전자상거래가 늘어나고 금융 거래 보안이 강화되면서 평판을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낯선 사람을 신뢰하고 협동하려는 우리의 내면화된 동기가 약해질지 모른다. 이런 신세계를 마주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계속 적응하고 변화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612 <Chapter 14 총, 균, 쇠 그리고 다른 요인들> 중에서


첫번째 밀레니엄에서 서구 위어드 WEIRD는 이슬람, 중국, 인도 보다 발전이 더뎠다. 그러나 두번째 밀레니엄에서 서구 위어드 WEIRD는 뛰어난 발전(소득 등)을 보이고 있다. 세번째 밀레니엄은 어디가 가장 발전되고 어떤 모습으로 진화될지 궁금하다.


위어드 WEIRD의 성향과 이를 비교한 다양한 집단의 사례, 특히 내가 한국인이다보니 한국(서울)이 예시로 나온 자료에 눈길이 간다. 서구문명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고 싶은 분들은 한번 읽어봐도 무방할 듯하다.


(21세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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