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저이 말로는 호랑이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요.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건 호랑이가 기꺼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할 때뿐이고, 그 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우리는 호랑이들의 터전, 그들의 영역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걸 그냥 내버려 두고 조용히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최선이랍니다. p37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 김주혜는 9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책의 옮긴이 박소현은 8살 때 과테말라로 이민을 갔다. 이 점을 앍고 이 책을 읽으니 그들의 눈에 비친 고국이 보였다. 이 책은 1917년 부터 1965년까지 안옥희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1917년 남경수는 홀로 사냥을 나왔다가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죽을뻔한다. 그때 일본 야마다 겐조 대위(21세)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고, 그 대가로 남경수는 호랑이들로부터 일본인들을 지키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남경수는 얼마 못가 배고픔과 병으로 사망하고 그의 장녀와 막내딸은 고향에 남겨지고, 아들 남정호는 홀로 경성으로 떠난다. 1918년 가난한 집에 입이라도 하나 줄이고자 옥희 어머니는 10살된 딸 옥희를 기방에 데리고 간다. 간단한 심부름이라도 하면서 밥도 먹고 돈도 벌라고. 그러나 기방 주인인 기생 은실은 허드렛일 할 사람은 이미 구했다며 옥희를 기생 견습생으로 삼는다. 허드렛일하면서 2년간 모아야 하는 50원을 옥희어머니에게 건넨다. 이로써 옥희는 평생 가족과의 연이 끊어진다.


그리고 익히 알듯이 1919년 3.1운동이 벌어지고, 뜻 있는 자들은 상해에 임시정부를 만들면서 독립의지를 불태운다. 친일파들은 일본에 붙어 부를 축적한다.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은 패망의 길에 접어들고 길을 가던 한국청년들을 잡아, 군대로 보낸다. 손에 죽창만 쥐어준 채 타국으로 보내 일본을 위해 싸우도록 한다. 여자들은 잡아다가 취직을 시켜준다며 위안부로 보낸다.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일본은 전쟁을 중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을 맞는다. 그 후 이념의 차이로 인해 남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숙청된다. 이명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도 이러한 이유로 죽지 않았을까 싶다. 1960년대 초반 박정희가 정권을 쥐고 공산주의자들은 또한번 숙청된다. 동지라고 믿었던 미꾸라지 황인수에게 배신당한...


역사의 큰 줄기에 따라 일이 벌어질 것이라 등장인물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대한제국 군대에 있었으나 나라를 잃고 농사를 짓다가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다시 총을 든 사냥꾼 남경수.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돈이 될 수 있는 은가락지와 라이터를 결코 팔지 않는다. 결국 이것이 자식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단이는 특유의 시적 즉흥성을 발휘하여, 세 여자아이의 성격에 따라 각각 어울리는 꽃을 지정해 주었다. _중략_ 옥희는 겨울 동백이었는데, 추운 북쪽에서 나고 자란 그로서는 한번도 본 적 없는 남부의 꽃나무라고 했다._중략_동백은 땅에 떨어지더라도 처음 피어났던 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아름답다. p132 / 5장 상해에서 온 친구 중에서


남경수를 꼭 빼닮은 그의 아들 남정호, 자신은 특출난게 없다하지만 제일 강한 여인 안옥희, 사랑을 버리고 실리를 따라간 김한철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군상이 이 책에 나온다. 그리고 남경수를 알아본 야마다 겐조, 나쁜 일본군인의 표본 하야시 소좌와 후쿠다 경부, 예술을 부와 결부시킨 (우리나라입장에서 보면 문화재 반출자) 이토 아쓰오 등 일본인의 모습도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연실과 그의 딸 연화, 월향과 그의 동생 예단이를 포함한 기생의 슬픈 사랑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처음이 불행했던 월향이를 제외하고, 연실, 연화, 예단이, 옥희 어느 누구 하나 아름답게 사랑을 이룬 예가 없다. 다들 그녀들이 꽃같을 때 예뻐하고 나이들어 더 젊은 이들이 나타나자 그녀들을 외면한다. 아니면 그녀들의 마음이 변했다하고 자신들도 변해버린다.

책을 다 읽고 작가 소개를 다시 읽어보았다. 30대의 작가, 타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김구선생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시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오랫동안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와 조선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진게 아닐까.


책을 다 읽은 후 표지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맞춰보자. 등장인물들의 가장 젊은 시절, 그 순간을 표지의 그림으로 옮긴거 같아 씁쓸하다.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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