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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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건담이 무슨 뜻이지요? 만화에 나오는 로봇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p133


책 제목에 로봇이름으로 익숙한 건담이 왜 나오는건지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표지의 그림은 중화요리집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국인이다. 한중일 삼국이 묘하게 섞여있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중국어사전에서 건담을 찾아보았다. 중국어로 健啖이라쓰고 jiàndàn(지엔딴)이라 읽는다. 건강하게 먹이다는 뜻이다. 이 책의 주인공 두위광은 70대 중반의 산둥출신의 화교요리사이다. 한국전쟁 이후 꽤 어려웠던 시절 먹을게 넉넉치 않았다. 그래서 많이 먹고 건강하게 살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두위광에게 지어준 별명이 지엔딴, 즉 건담이다. 두위광은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병든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결국 10살 남짓한 위광이 구멍가게에서 양갱 하나를 훔치다가 주인에게 실컷 매맞는다. 10살이면 초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어린아이인데, 학교도 못가고 배고픔에 도둑질을 하다니 시대가 시대인만큼 안타깝다. 그런 아이를 피가 나도록 때리는 어른도 너무하다. 이를 보다못한 구멍가게의 여주인이 위광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자장면 한그릇을 먹인다. 자장면의 맛에 눈을 뜬 위광은 중국집에서 잡일을 하며 하루 자장면 한 그릇을 얻어먹으며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연희동에 중화요리 건담을 운영한다.


현재 두위광은 70세가 넘은 노장이다. 그 세월의 굴곡만큼 두위광 개인의 삶도 굴곡지다. 꼬장꼬장한 두위광은 처세술에 익숙치 않아 사람들로부터 누명을 쓰기도 하고, 누명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가게 문을 닫기도 한다. 어느 날은 원리원칙대로 요리를 주문받다가 남산에 끌려가기도 한다. 요리 하나에 남산이라니 독재정권 너무하다.


그 지옥불에서 살아남으면 불사신이 된다. p73


지옥불에서 살아남으면 불사신이 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지옥불에 타 죽든지 버텨내 불사신이 되든지 해야 한다. 두위광은 지옥불 같은 스승과 선배들 틈에서 살아남았고 이제 요리에 있어 불사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문제는 여기서 또 발생한다. 자기가 배운대로 제자들 역시 혹독하게 가르치는 것이다. 두위광의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오해를 반복한다. 시대는 계속 변화하는데 두위광은 맛에 대한 변화는 물론 시대흐름도 거부한다. 그런 고집이 중화요리 장인의 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고집 때문에 오해와 미움을 낳아 안타까웠다. 해명할 일은 해명하고, 문제가 생기면 합법적이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면 삶이 더 순탄했을 것이다.

중화요리집, 중국집이라고 하면 주방장과 보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칼판/면판/싸완 같이 업무별로 분리되어 있다는 걸 알고 흥미로웠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밥을 먹어도 서빙해준 직원들만 만날뿐, 직접 주방에 들어갈 일이 없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중화요리가 주메뉴이지만 그 외에 유럽의 제과제빵 및 분자요리, 칵테일 등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요리는 만드는 사람 뿐 아니라 먹는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조합해 한접시의 요리가 된다는 등 많은 명언이 담겨있다. 두위광이 흥분하면 산둥식 중국어가 튀어나오는데,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문맥상으로 뜻을 유추하기는 쉽다. 베이징에서 먹었던 자장면은 정말 담백한 춘장에 면을 비빈것이라 한국 사자표 춘장에 맛들린 내 입맛에는 맛이 없었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글을 보니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


다양한 요리를 글로 읽으니 어떤 모양인지, 어떤 빛깔인지 직관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나 웹툰으로 나오면 요리를 눈으로 보는 재미가 있어 좋을거 같다.




(시월이일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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