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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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호선이 인과 예가 사라진 아사리 판이라면, 2호선은 정의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무뢰한들의 세상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항철도와 연결되는 9호선은 출근 시간에 지옥도가 열립니다. _중략_공항철도는 놀랍도록 깨끗하고 평화롭습니다. p41~42 <공항철도: 호소풍생_전건우> 중에서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라는 제목이 익숙하면서 낯설었다. 내가 수도권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다닐 때 많이 들었던 말은 <밀지 마세요, 사람 내려요!>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야하는데,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타는 바람에 사당이나 교대에서 못 내리는 사람들을 왕왕 보았다. 그러면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 내려야 되요, 밀지 마세요!>라고 했다. 나도 가끔은 그랬던거 같다.


심지어 시간표에 맞춰 운행되는 지하철은,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못 내렸다고 아우성쳐도 운전칸의 기관사는 듣지 못한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경기도에서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였다. 1호선을 타고 부천에서 신도림으로 이동하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뒤 강남역으로 갔다. 9호선이 개통된 후로는 1호선을 타고 노량진으로 간 후, 노량진에서 9호선 급행을 타고 신논현역으로 갔다. 지금은 공항철도 근처에 살고 있다.


그래서 출근길 악명 높은 신도림역, 사당역, 교대역, 노량진역 등을 다 거쳐봤다. 인의예가 사라진 아싸리판 1,2호선 이야기에 고개가 끄떡인다. 그리고 출근길 9호선, 특히 급행 9호선을 탈때면 인간이 공중부양도 할 수도 있구나 새삼 깨닫는다. 사람들이 꽉차서 밀릴 때 마다 발이 공중에 뜬다. 작가도 이를 깨달았는지 출근길 지하철은 인간성이 사라지는 곳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지하철 앤솔로지>답게 6명의 작가가 7가지 지하철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공항철도에서 벌어진 산업스파이와 편관장의 엉뚱한 이야기, 가장 오래된 선로 1호선에서 벌어진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 2호선의 지옥철과 3호선 괴물의 이야기, 4호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와 물품보관함의 이야기, 5호선의 멀티버스 이야기, 6호선 버뮤다 응암역 이야기로 짧게 설명이 가능하다. 어떤 단편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어떤 단편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로 짠내나는 현실과 비현실같은 이야기로 나눠져 있다.


문학은 삶에 아무런 실용도가 없다는데 이 순간만큼은 예외였다. 이 순간을 무마하기에 문학보다 더 좋은 핑계는 없었다. p83 <6호선 :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_조영주> 중에서


6호선 응암역이 수도권 지하철 중에 특이하게 단선로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 같은 비교적 젊은 사람도 저기 가면 헷갈린텐데, (앱지도를 볼 수 있는) 휴대기기에 취약한 어르신들은 더욱 헷갈리지 않을까 싶다. 버뮤다 응암지대는 정말 삼포, 사포 세대의 사랑을 보여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랬는데 새드엔딩에 가까운 열린 결말로 이야기가 끝났다. 작가는 현실을 반영해 결국 새드엔딩으로 끝냈다고 한다.


이 책은 단편 하나가 끝나고 바로 작가의 말이 나와서, 어떤 의도로 쓰여진 단편인지 이해하기 쉽다. 표지 지하철에 사람이 아닌 <괴물들>이 타고 있는지 책을 다 읽고 이해가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에 사람은 없다!


앤솔로지 문학: 한 작가의 여러 단편이나, 특정한 주제에 따라 여러 작가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


(들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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